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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Apr 03. 2024

슬픔들

            김려원

  슬픔들

                                                                                                                  


   나는 그냥 나무 아래 서 있는데 벚꽃이 피어요 벚꽃은 슬픔인데 벚꽃이 피어요 꽃은 네 머리에 꽂혀 있어요 꽂힌 꽃은 꽃이 아닌데 머리에서 피어요 전에 네가 걸었던 길이 잇따라 피어요 내 앞에서 미친 듯이 처음인 듯  


   나는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 꽃이 피었어요 비 온 뒤에 피었어요 울렁울렁 피었어요 네가 심하게 피어서 누워있었을 뿐이에요 찬비가 두근두근 뛰어서 엎드려있었을 뿐이에요 나를 사랑하지 말아요 나는 아파요 네가 건네준 볼이 이렇게 가까이서 달아올라요 우리는 꿈에서라도 키스한 적 있나요     


   나는 다만 길을 잃었을 뿐이에요 회색을 건너고 있는데 벚꽃이, 저 분홍이 이 분홍이 처음인 듯, 전에도 처음인 듯, 나를 그 아래로 데려갔어요 우리는 처음으로 키스한 적 있나요   

  

   네 무성한 머리카락 사이에서 벚꽃이 교회 종소리처럼 피어요 엄마 목소리처럼 피어요 어제의 빗소리처럼, 너를 상상한 입술처럼, 피어요  

    

   나는 그냥 나무 아래 서 있었을 뿐이에요 지나갔을 뿐이에요 그래서 그냥 피었어요 미친, 벚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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