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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갱 Feb 23. 2022

파마하셨어요? 곱슬머리예요!

Curly Girl Method (CGM)

전형적으로 두꺼운 모발곱슬머리 가진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매직을 시작으로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매직'이 등장하자마자 유행처럼 번졌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두발 단속을 했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이 머리를 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자 정도의 곱슬인 친구가 있었는데, 항상 선생님께 지적을 당하다 참다못해 진짜 자연 곱슬이 맞다는 확인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10대20대를 자의던 타의던 항상 쫙 펴진 머리를 한 체 보냈고, 곱슬머리는 당연히 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다 20대의 끝자락, 결혼과 동시에 미국에 가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머리를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혹은 편견 때문에 입국 한 달 전 숏단발에 볼륨 매직, 검정 모발로 염색을 마쳤다. 두어 달이 지나니 머리 점지저분해졌고, 1시간 30분 거리의 한인타운에 위치한 한인 미용실에 가서 머리끝을 정했다. 정말 많이 잘랐다고 봐도 5센티 정도? 팁까지 지불을 하고 나니 영수증에 찍힌 최종 금액은 55불이었다. 맙소사 한국 돈으로 하면 6만 원이 넘는 셈. 그런데 나의 머리는 응팔에 나오는 덕선이었다. 혹은 최양락 아저씨. 그저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에만 들었다면 1시간 30분의 거리도, 55불의 금액도 가치가 있었을 텐데.. 그나마 평점이 가장 높았던 미용실이었건만 다른 곳을 도전해볼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일단은 무작정 길러보기로 했다.

글 아래, 모든 변화과정이 담긴 사진이 있어요.


매직을 한 부분을 모두 라내고 거지 존이라 불리는 마의 구간을 지나 일 년을 넘게 기르고 나니 정말 그냥 자연인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따금씩 우울해졌고, 남편도 내게 웃픈(웃기지만 슬픈) 표정을 지었다. 결국은 남편이 다이슨 에어 랩을 들고 나타났는데 마치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좋은 건 잠깐이었고 현실은 또다시 괴로웠다. 내가 갖고 있는 곱슬의 성질이 있다 보니 그 위에 에어 랩을 하면 머리의 부피가 매우 커져서 1차적으로 머리를 편 후에 말아줘야 했다. 그러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팔도 아프고 무엇보다 여름엔 너무 더웠다. 나도 광고 속 언니처럼 샤랄라 해질 줄 알았는데..


'아 이 비싼 걸 사놓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구나. 미국 사람들은 다 생머리인 거야, 가발인 거야 뭐야 어떻게 사는 거지?' 하며 유튜브에 검색을 해봤다. 서로의 모질은 다르지만 웨이비 헤어, 컬리 헤어라고 불리는 곱슬머리를 가진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머리를 잘 관리할 수 있는지, 어떤 제품들을 사용하면 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둔 것들이 많았다.


일명 Curly Girl Method (CGM)

우선 곱슬머리에도 단계가 있었다. 나의 머리는 2ABC 어딘가 정도였기에, 곱슬머리인들 사이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영상을 보고 또 보아도 이게 정말 가능할까 싶고 내 머리는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하라는 대로 머리를 말려보니 펌을 한 머리처럼 구불구불해졌다. 그들이 설명하는 기본 전제는 곱슬머리는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열을 조심해야 하고, 유수분과 단백질의 밸런스를 잘 맞춰주어야 컬이 탱글탱글하게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열을 최대한 멀리하니 오히려 건강해져서 바스락 거렸던 머리칼이 부드럽게 변해갔다. 다행스럽게도 한국보다 곱슬머리를 위한 제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어서 곱슬머리 전용 샴푸를 비롯해 각종 오일들을 어려움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CGM 방법

1. 건조함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감지 않는다.

2. 머리를 젖은 상태에서만 빗는다.

3. 곱슬 전용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사용한다.

4. 리브 인 컨디셔너, 천연 오일을 사용한다.

5. 무스 또는 젤로 컬을 고정한다.

6. 두피만 말리고 나머지는 자연 건조한다.

컬 패턴이 잡혀 가는 과정 (대략 6개월)
21.05.18 (CGM 관리 전) -> 22. 02. 20 (현재)

최대한 간결하게 적어보았데 처음엔 힘들어도 손에 익으면 생각보다 간단하고, 머리를 건조한 뒤 펴고, 에어 랩으로 다시 스타일링하는 수고로움 없이 매우 편리하다. 또 여름에는 덜 말릴수록 컬 패턴이 살아나니 일석이조였다.


내 머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펌을 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제는 의심을 받는 게 재밌기도 하고, 때론 내 머리가 이렇게 예쁜데 그동안 몰라보고 20년을 지독괴롭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생머리가 부럽고, 정갈한 머리가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미용기술이 훌륭한 한국에 돌아가게 되는 날이 오면 예전처럼 매직을 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제는 남의 시선 때문에 내 곱슬머리를 버린 체 생머리인 척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개성보다 중요한 건 없다. 모두가 똑같을 필요는 전혀 없으며, 곱슬머리에 '악성'이란 단어를 붙일 필요도 없다. 영어로는 웨이비, 컬리, 코일리 각기 다른 단계의 곱슬머리를 지칭하는 명칭이 있는데, 우리는 왜 굳이 '악성' 곱슬일까.


악성

1) 병이 잘 낫지 않거나 전염성이 강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독한 것.
2)(기본 의미) 나쁘고 독한 성질.


곱슬머리는 병이 아니며 나쁘고 독한 성질도 아니다.
더 이상 '곱슬머리 = 지저분한 머리' 로 인식되지 않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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