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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Nov 20. 2023

홍어 말고 양념게장

“엄마가 당신 먹으라고 양념게장도 했네.” 올해 추석 연휴, 목포 시가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는데 남편이 뿌듯해하며 한 말이다. 시어머니의 양념게장은 비결을 알아내어 어디에 몰래 써두고 싶을 만큼 맛있다. 설탕, 고춧가루, 간장의 적절한 배율 때문인지, 모든 재료를 집에서 담그고 만든 시어머니의 정성 덕분이지. 아무튼, 맛깔스럽다. 음, 그러나, 맛있는데 마음은 씁쓸하다. 


결혼 첫해에 시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홍어 많이 있다. 맛있게 먹어라.”

“어머니, 저 홍어 못 먹어요.”     


다음에 가면, 

“홍어, 이 맛있는 걸 안 먹고 뭐 하니?”

“어머니, 저는 홍어는 못 먹겠더라고요.”     


결국, 3년 전 이렇게 말해 버렸다. 

“이번에 홍어 값이 많이 올랐더라. 여기 온 김에 많이 먹어라.”

“어머니, 홍어 못 먹는다고 십 년도 넘게 말씀드렸는데요.”     


메인 메뉴 옆 밑반찬을 깨작거리던 나는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십 년에 힘주어 발음했다. 내가 빠른 속도로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시위하듯 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던 걸 그녀는 십 년 동안 모르고 있었다. 나이 많으신 시어머니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일하다가 자주 멈춰서 쉬어야만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며느리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기보다,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서 속의 말을 꾹꾹 눌렀다.     


그런데, 결혼 후 십 년이 넘으니 남편만 좋아하는 홍어, 육회가 식탁 한중간에 떡 차지하는 걸 보니 배알이 꼬일 대로 꼬여서 하고 싶은 말이 툭 나왔다. 이제 나에게 홍어 얘기는 그만하라는 뜻을 확실히 밝혔다. 이후 상에는 양념게장이 올랐다. 홍어와 육회 옆에 놓인 양념게장. 게를 하나 들어 아작아작 씹어먹다가, 몸통 주변에 붙은 양념까지 싹 긁어다가 밥을 먹는다. “우리 막둥이, 막내 강아지야. 밥 많이 먹어라.”라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 확인하곤 숟가락을 더 빨리 놀린다. 내가 낳은 우리 집 삼 남매가 아닌 키 180cm 장정인 남편이 그녀의 강아지라는 사실에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그래도,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고 보니, 다 큰 아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어서. 또, 양념게장은 며느리인 나를 위한 음식이니까. 아들만큼은 아니어도 시어머니가 이제 며느리 기호를 알고 신경 써서 준비한 음식이니 말이다.      


목포에서 택배가 왔다. 원형 플라스틱 반찬 통 안 양념게장, 손수 기른 열무로 만든 김치,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잘게 썬 깍두기가 하얀 스티로폼 통에 그득하다. 반찬과 반찬 사이 조그만 틈에 볶은 깨 봉지도 있다. 결혼식장에서도, 신혼여행 다녀와서 인천으로 올라갈 때도, 첫 손주를 보고도, 삼 남매를 양손에 잡고 가는 아들을 볼 때도 시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처음엔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가, 이젠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반쯤 이해했다. 그런데, 이젠 일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그녀의 자식 사랑 마음에 공감이 간다. 아들만 신경 쓴다고 며느리인 내가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김치 담가서 택배 보내는 게 힘들지 않냐는 아들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일 년에 몇 번 못 보잖아. 앞으로 20번을 더 볼 수 있을지, 30번을 더 볼 수 있을지 모르잖니.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니 괜찮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 이번에는 남김없이 맛있게 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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