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뭇잎 Apr 22. 2024

사람과 사랑이 있는, ‘책방활짝’의 두 번째 북 토크

날씨 참 좋다. 햇살은 따사롭고, 그늘은 시원하니 반소매 위에 얇은 카디건을 걸치면 딱 맞는 신선함이다. 이런 날은 꽃나무 아래 돗자리 펴놓고 누워서 책을 보거나, 가족과 함께 김밥이나 과자봉지를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정답게 주말을 보내고 싶어진다. 이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데, 귀한 토요일 오후 2시에 책방 북 토크에 신청한 이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슬픔의 방문』 저자 장일호 작가 북 토크가 있는 날이다. 


'<시사IN> 기자야망은 크지만천성이 게을러 스스로를 자주 미워한다. ‘망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망해 버리고 싶지는 않다묻어가는 일에 능하고 드러나는 일에 수줍은 사람이토록 귀찮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책 읽고산다.'


여기까지는 책에 적힌 작가 소개란이다. 천성이 게으르다는 표현에 공감하기 어렵다. 이유는 본업 기자 외에 전국 방방곡곡 도서관, 동네 책방에서 강연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북 토크 사회까지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건 2023년 5월, 인천 동구의 책방에서였다. 참여하기 전에 책을 읽고 빼곡하게 페이지마다 형광 인덱스를 여기저기 붙여놓았다. 담담하게 쓴 글 속 행간에 다정함이 가득히 들어 있어서 반했고, ‘우리, 같이 망해 볼까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는 "오늘 여기 있는 분들 집에 못 가실 수도 있어요. 밤새 북 토크도 가능합니다."라며 크게 웃었다. 책장 행간에 유쾌함, 열정 또한 넘치는 이였다. 그날 다짐했다. ‘내가 책방을 내면 꼭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야지.’


책방을 하니, 좋은 점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와 소소한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 어제는 장일호 작가와 짧은 카톡을 나눴다. "제가 지하철역으로 모시러 나가도 될까요?" 같은. 답은 "저 명색이 기자인데, 잘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였다. 카톡으로 자료도 받고 책방 도착 시간에 관한 메시지도 나누고. 그것만으로도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기분이었다. 


책방에 행사가 있는 주는 청소주간이다. 바퀴가 없는 무거운 책장도 힘껏 밀어서 벽으로 붙이고 4인용 탁자 2개도 이었다. 탁자 주변으로 의자 18개도 배치했다. 청소기 2번, 물걸레 1번, 책장 먼지 털기도 여러 번. 신청한 이들이 참여비로 낸 돈에서 최대한 맛있고 좋은 걸로 사서 다과도 준비했다. 책방 전면 유리창과 내부 모임 공간의 문 앞에 A1 크기의 포스터도 붙였다. 마지막으로, 『슬픔의 방문』을 한 번 더 읽었다. 책방 문 연 지 두 번째 북 토크이건만 역시나 떨린다. ‘간식이 중간에 떨어지면 어쩌나, 의자가 딱딱하여 불편하면 어쩌나, 행사 시간 배분이 잘 안 되면 어쩌나, 노트북에 연결한 TV 모니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쩌나.’ 소소한 걱정으로 행사 시작 전까지는 배도 고프지 않다. 북 토크가 시작되었고, 활짝 웃으며 여유 있는 작가의 진행에 참석자들은 연신 미소를 짓는다. 역시나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한 시간이었다. 


서글픔과 피곤함이 기어이’ 다정과 평화를 닮아 가는 일은 타인과 세상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통과하는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모르겠는 것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라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 슬픔의 방문』 P165 -      


내가 하는 일을 뒤에 오는 사람에게 권할 수 있으려면 내가 선 땅이 좋아지도록 부지런히 일궈야 한다. - 슬픔의 방문』 P209 -    


처음 시작은 ppt 자료를 준비해온 작가의 강연을 듣는 시간이었다. 그녀가 전달한 건 강연만이 아니었다. 북 토크의 절정은 독자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 그녀는 예정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모든 독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책을 읽을 때도, 작가를 만났을 때도 우리는 교란되었다. 마음이나 상황 따위를 뒤흔들어서 어지럽고 혼란하게 하는 상태에 기꺼이 빠져들었다. 슬픔이 방문할 때 나 자신과 우리를 지키는 일, 읽기와 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속한 세계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북 토크 참여는 처음인데 참 좋았어요.”, “작가님의 다음 책이 기대되어요.” “책방 인스타를 보다가 오늘 아침에 신청했는데, 이렇게 올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어요.”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작가를 보며 우리는 '함께 망하기'를 할 수 있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까지 덤으로 얻은 시간. 책방 연 보람과 기쁨이 충만한 날.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었던 날. 책방 연 지 40일. 역시 책방에는 사람이 북적북적해야 사랑이 넘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님 없을 때 책방지기는 무엇을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