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자 일요일이다. 아빠의 3번째 기일이기도 하다. 평소엔 일요일, 월요일이 책방 휴무이다. 이번 주 인스타 공지에 ‘이번 주 휴무일 변경, 일월 →월화.’라고 남겼다. 7일 화요일은 막내의 대학병원 진료일이다. 화요일에 문을 못 여니 일요일에라도 책방 문을 열겠다는 계산이었다. 분명 아빠 기일이 5월 5일인걸, 좀 전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화요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다른 날 하루라도 책방을 더 열어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일요일=기일=전 굽는 날’이라는 공식을 생각하지 못했다. 잊지 않은 게 아니구나. 잠시나마 망각한 나 자신이 어처구니없다. 빈틈투성이다. 인스타 공지에 이미 게시물을 올렸고, 주룩주룩 장맛비처럼 내리는 날 궂은 일요일, 기어코 문을 열었다.
점심 식사는 배달 초밥이다. 책방에서 먹는 한 끼로 하나씩 입에 넣어 먹기 간편하고 냄새가 덜 나는 빵과 떡을 선호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비슷한 종류의 빵과 떡을 먹었더니 오늘은 다른 게 먹고 싶어졌다. 다디달면서 물컹하게 씹히는 한 입 거리보다 쫀득쫀득 농밀하게 뭉쳐져 있는 밥알이 먹고 싶었다. 얼큰한 국물도 있으면 더 좋겠지만, 책방에서 뒤처리하기 힘드니까 패스. 9,000원짜리 어린이 초밥을 선택했다. 초 새우 3개, 달걀 3개, 유부 3개가 한 세트이다. 특별히 초 새우 초밥과 달걀, 유부를 좋아해서 어린이 초밥을 고른 것은 아니다. ‘오늘의 초밥’ 세트는 12개 16,900원이다. 책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책 1권을 팔면 3천 원이 남는다. 책방 문을 연 이상 적어도 3권은 팔아야 점심값을 벌 수 있다. 비 오는 휴일, 책은 팔리지 않고, 우두커니 책방만 지키다가 퇴근할 수도 있으니 어린이 초밥을 시키는 게 맞다. 아빠의 기일 준비해야 하는 임무도 잊고 나왔는데 비싼 밥을 먹을 수는 없지.
초밥을 먹으며 친구 맺은 책방 인스타를 둘러본다. ‘저 책방은 제주도에서 확장공사를 하네, 여기는 <2024년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10권 이상 입고를 했나 봐, ○○작가님이 망원동 ◆◆책방에서 북 토크를 하시네.’라고 중얼거리며 다른 책방의 사진을 부러운 눈으로 한숨 쉬며 본다. 그러던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복토크 신청비는 얼마예요?”
“2만 원입니다.”
“혹시 책 안 주고 2만 원인가요? 그럼, 커피는 주나요?”
북 토크 신청비를 2만 원 받기로 하기까지 많이 고민했고, 나름 다과를 정성껏 준비하는 걸로 신청하는 이에 대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커피를 당연히 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당황했다. 북 토크를 진행하면서 들어가는 비용, 나가는 비용을 철저하게 따지면서 음료와 간식을 사지 않았는데. 그냥, 대충 봐도 마이너스이다. 커피를 주냐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지만 웃으면서 답을 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전화상이지만, 미소는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커피를 내어 드리진 않고 탁자 위에 음료와 간식을 준비해 두긴 합니다.”
해보지 않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도 책방을 열기 전에는 책 한 권에 얼마가 남는지, 저 책방의 북 토크는 5천 원, 이 책방의 신청비는 1만 원, 어떤 곳의 행사는 2만 원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실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2만 원을 받아도 남는 것은 없다는 사실 뿐. 2만 원을 받지 않은 행사에서 비용은 어떤 식으로 감당하는지 알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첩에 적었다.)
‘신청비 2만 원이 많구나. 이렇게는 안 되겠는걸. 출판사 홍보비에서 도움을 받지 않는 진행은 시도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돈이 안 되는 책방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음 행보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책방을 처음 오픈한다고 했을 때, 책방을 내고 7년 넘게 운영하는 선배 책방지기가 그랬다. “3개월 치 월세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해.” 월세를 못 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때 결심했다. 3개월 동안 수입과 지출을 세세히 따져서 순수익을 계산하지 않겠노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꺾이는 마음을 겪고 싶지 않았다. 2024년 1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며 계약을 했다. 2월, 매서운 추운 겨울 공사를 했고, 3월 새학기 시작에 맞춰 문을 열었다. 직장에 출근할 때와는 다르게 아침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을 하면서 자영업의 일상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종사자를 만나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직장 다닐 때처럼 주말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 하지도, 일요일 오후 5시만 되면 증상이 드러나는 월요병도 겪지 않는다.
그러나, 종류가 다른 스트레스로 미간을 자주 찌푸린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것은 정말이지 다르다는 걸 넘치게 느끼는 중이다. 다른 결의 꺾이는 마음. 인스타 팔로워 숫자로 증명해 보여야만 하는 압박감, 프로그램 모객에 대한 불안감, 기획력이 부족하다는 의심이 나를 쫓아오는 중이다. 그 와중에 해보고 싶은 걸 마음껏 했던 3개월. 이제 정산할 때가 다가온다. ‘돈’이라는 숫자가 안정되어야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다. 현상 유지도 아닌 마이너스가 계속된다면 빠르게 책방에서 손 떼야 하는 게 용기라고 합리화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현재 나에게 없는 마음은 혹시 절박함일지도 모르겠다. 죽기 살기로 해도 모자랄 판에 유유자적 한량처럼 운영하고 있지는 않은지. 5월 중순에 있을 북 토크가 끝나면 컴퓨터 화면 가득 엑셀 프로그램 띄운 후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야만 한다. 지금까지 미처 하지 못한 일, 정산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