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숙희 씨가 왜 오지 않으실까? 아, 화요일이다. 화요일은 숙희 씨 쉬는 날이다.
“여기는 책 파는 곳인가요?”
“네, 책도 팔고 독서 모임도 하는 곳입니다.”
“누가 여기 책 읽고 가도 되는 곳이라고 해서 왔어요.”
숙희 씨는 그때부터 일주일에 4번 책방을 찾아왔다. 그녀는 책방 근처 풍미가 일품인 감자탕 음식점에서 근무 중이다. 책방 휴무와 겹치는 요일을 제외한 수, 목, 금, 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매일 책방 출석 도장을 찍는다. 중간 쉬는 시간인 3시부터 4시까지의 시간에 책을 읽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제는 책방이 생겨서 진심으로 좋다는 말도 했다. 자신의 일터에서 마음 편히 쉬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업무를 하다가 중간에 손을 탁 털기도 어렵고, ‘이것만 하고 쉬어야지.’ 하다 보면 금쪽같은 휴식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 그녀가 읽는 책은 ‘2023 트랜드 코리아’. 4월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읽은 책 페이지에는 밑줄 친 자국이 가득하다.
“왜 ‘2024 트랜드 코리아’를 안 읽으시고 2023년도 책을 읽으세요?”
“2023에도 배울 점이 가득해요.”
나는 ‘평균 실종, 오피스빅뱅, 체리슈머’ 목차를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서 한 치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덮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평균적인 사고, 대다수 사람이 찾는 무난한 상품으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 ‘평균 실종’이 2023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통상적인 것의 개념이 무너지고 평균을 뛰어넘는 필살기가 필요한 시대는 멈추지 않고 계속일 것만 같은데.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하고, 배울 점이 많아서 경영 관련 책을 읽지만, 소설도 좋아한다는 그녀는 독서 모임에도 관심을 보인다. 화요일 밤, ‘백수린 작가의 책 함께 읽기’ 모임도 신청을 했다. 책방을 열면서 다양한 이들과 만나고 미처 알지 못했던 분야로 내 세계가 더 넓어지기를 희망했다. 대단한 걸 바란 게 아니다.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내일 너머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을 만나는 게 세계의 확장이다.
“원장님, 혹시 상담 가능하세요?”
원장님이라니, 혹시 이곳을 학원으로 착각하셨나. 예상은 적중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면 책방이 아닌 글쓰기 학원처럼 보일만 했다. 책은 있지만, 일반 서점처럼 잔뜩 꽂혀 있지는 않고, 책상과 의자가 글쓰기 학원의 모양새처럼 보이니 말이다. 상담을 요청했던 중년의 남자는 책방을 영어학원으로 착각하여 내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책방 옆은 프랜차이즈 영어학원 공간이며 초등학생 수강생이 많이 오고 가는 곳이다. 아, 글쓰기 학원이 아니라 영어학원으로도 오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기는 학원이 아니라 책방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중년 남자를 보고 곧 옆 사무실로 가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의외의 말을 했다.
“여기가 책방이라고요? 더 잘 되었어요. 제가 좀 둘러봐도 될까요?”
그러더니 토요일 중학생 독서 모임(현재는 일요일로 변경)에 아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아휴~급하지 않으니 댁에서 아드님과 의논해보시고 연락해주세요. 저희 아들은 독서 모임 싫어해요.”
“아닙니다. 무조건 해야지요. 공부는 못 해도 되는데, 책은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하여 중학교 1학년 다한이는 주말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오게 되었으니, 한 번 오고는 안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예상을 깨고, 다한이는 독서 모임에 한 번 온 이후에 연년생 여동생 라엘이와 함께 평일에도 와서 책을 읽는 중이다. 다한이는 기타 학원 가기 전에 들러서 1시간씩, 라엘이는 미술 학원 가기 전에 킥보드를 쓱 하고 타고 와선 책을 읽다가 휭 하고 나간다. 아직도 나를 보면 쑥스러운 듯이 눈을 살짝 피한 채, 인사를 하는 남매는 ‘긴긴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열세 살의 걷기 클럽’,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책방을 연지 겨우 80일이 넘었지만, 나의 바람이 하나, 둘 눈 앞에 펼쳐진다. 이런 소소한 기쁨이 한 곳에서 오래오래 책방을 하는 힘이 아닐까? 30분씩, 1시간이라도 책을 고르고, 눈여겨보던 책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며, 선택한 책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숙희 씨와 다한이, 라엘이 같은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 아, 큰 희망 사항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