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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명동

by 나뭇잎 Feb 10. 2025

스무 살, 부모님 품을 떠나 어설프게 자립했다. 그 시작은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0길 35-4에 있는 ‘가톨릭여학생관’이었다. 어쩌다 보니 시골에서 올라와서 지하철 환승도 제대로 못 하던 내가 유학 생활은 서울 시내 한복판, 명동에서 하게 되었다. 어떤 이가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 명동 산다고 대답하면, 모두 한 번 더 확인했다. ‘명동에서 산다고요? 거기에 지낼만한 곳이 있어요?’라고. 명동 성당 뒷길, 번화한 골목 사이에 기숙사가 있었다.      


기숙사에는 남다른 규칙도 존재했다. 1997년, 삐삐로 연락하는 시절이었다. 시티폰은 아주 극소수만 들고 다닐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고향에서 기숙사로 전화가 오면, 1층 사감실에서 3층 복도로 신호를 보내 전화를 연결해 줬다. 가령, 나에겐 짧은 음 4번, 룸메이트에겐 긴 음 1번 후 짧은 음 3번처럼 각자 정해진 신호가 있었다. 짧지만 정확한 ‘삑, 삑, 삑, 삑.’ 은 나를 부르는 신호였다. 암호 같기도 한 벨 소리가 복도에 울리면,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전화가 끊어질까 봐 얼른 실외용 슬리퍼로 바꿔 신고 복도 끝에 있는 전화기를 향해 뛰었다. 전화기를 들면 젬마 사감 언니가 차분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구에서 전화 왔어. 통화해.” 


고등학생 시절부터 로망이었던 기숙사 생활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눈 구경도 하기 힘든 남쪽 지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서울 추위는 나에게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니 이렇게 냉난방에 취약한가 짐작도 해보았다. (지금은 리모델링 했다고 한다.) 머리 부분이 철제로 된 1인용 침대에 누워 창가에 있는 라디에이터를 켜고 두꺼운 솜이불에 양말을 신고 자도 추웠다. 추워서 각자의 침대를 두고 룸메이트와 한 침대에 딱 붙어 누웠다. “집에서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걸 알까?” 속닥대며 슬프면서도 웃긴 상황에 깔깔 웃다가 잠들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했다는 사실은 묘한 자부심과 상당한 허전함을 포함한다. 아무튼, 기숙사에서 보낸 시간은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 위안을 주었다.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지만, 명동은 나에게 그 시절의 기억이 덧입혀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명동에 가봐야지 생각만 하던 어느 날,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유원> 공연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온유 작가의 소설 『유원』은 나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유원은 6살 때 언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이다. 아파트에 불이 나자, 언니가 이불을 물에 적셔 유원을 감싸 창밖으로 던졌다, 결국, 유원은 살아남았지만, 언니는 그렇지 못했다. 유원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언니를 미화하는 이들에 대한 거부감을 안고 살아간다. 연극 속 유원은 학교 옥상에서 수현을 처음 만난다. 마스터키로 학교 옥상부터 낡은 아파트 옥상까지 닫힌 문을 따고 다니는 조금 이상한 아이 수현. 유원은 수현과 함께 햄버거를 먹고, 노을과 불꽃놀이를 보며 점차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그리고 비로소 수현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서게 된다. 


설날 다음 날, 딸과 며느리 일정을 마치고 연극을 보면서 혼자만의 호사를 누렸다. 연극이 끝난 후,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가 나오자마자 음식 사진을 찍어 스무 살 시절의 룸메이트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새해 인사와 함께. 그녀의 문자창 안에서 환호가 느껴졌다. “오! 우리의 소울 푸드,” 오랜만에 찾은 명동교자는 여전히 복잡하여 느긋하게 앉아서 여유 있게 맛을 음미하지는 못하여 조금 아쉬웠지만, 뭐 괜찮았다.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은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었고, 진한 국물 맛에 마음까지 따뜻해졌으니. 면발은 쫄깃하고 국물은 깊고 구수했다. 한 숟갈 뜰 때마다 옛 기숙사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소소한 식사 시간이 떠올랐다. 술독에 들어갔다가 겨우 일어났더니, 아침 식사 메뉴가 카레여서 괴로웠던 기억은 덤으로 따라왔다. 명동의 오랜 맛집은 여전히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칼국수로 배를 채운 후, 주한중국대사관 근처에 있는 ‘가무’로 향해 비엔나커피를 마셨다. ‘가무’도 오랫동안 명동을 지키고 있지만, 스무 살의 나는 가보지 못한 곳이다. 그때는 자판기 커피를 주로 이용했으니까. 미팅과 소개팅하는 날이 아니면 카페에 잘 가지 않았다. 꽃 무늬 찻잔 속, 크림이 잔뜩 얹힌 비엔나커피는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졌다. 듬뿍 들어간 크림이었지만, 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풍성함이 오랜만에 느끼는 사치 같아 마음에 들었다. 밖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 것이 얼마 만인지. 유제품만 먹으면 배가 아픈데, 이번엔 이것마저도 수월하게 넘어갔으니 그마저도 좋았다.    


유원이 수현과 함께 마음의 짐을 덜어내며 힘듦을 나누었듯, 나도 친구가 있어서 비록 숫자로는 막 성인이 되었지만, 완벽한 어른이 아니었던 불안한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 기숙사 방 안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웃고, 힘든 순간을 나누며 서로의 하늘이 되어 준 그날을 이리도 그리워할 사십 대가 되었다니. 스무 살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오래된 친구의 따뜻한 인사처럼 반가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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