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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a Jul 08. 2023

하루

20210816

우물 안에 있다.

어릴 적 이 우물은 태평양 같았고, 학창 시절 이 우물은 호수 같았고, 성인이 되어 이 우물은 작은 연못이 되었다.

몸이 커진 탓인지, 자유롭게 이리저리 헤엄칠 수 있던 나의 예쁘고 광활했던 바다가 이제는 조금의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는 비좁은 세계가 되었다.


이 우물을 나가야 한다. 더 이상의 숨 쉴 공간은 없다. 지나온 시간 동안 고인 물로 이미 가득 차버렸다. 하지만 우물의 입구에 붙잡을 밧줄은 없다.

저 밖에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인다. 친근한 눈, 애정 어린 눈, 격려의 눈, 무심한 눈, 연민의 눈, 질투의 눈, 지친 눈… 모두 각양각색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벗어나고 싶다. 이 모든 관심이 버겁다.


우물 안에 혼자이고 싶다. 파아란 하늘에 여유롭게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어둠에 따스히 드리우는 햇살을 만끽하며 숨 쉬고 싶다.


몸이 무거워진다.

시선들 위로 먹구름이 차오른다.

햇살이 없다. 여기는 어둠이다.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어쩌면 비일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양이다.

눈을 뜨기 버겁다. 숨쉬기도 버겁다. 헐떡인다.


수면이 올라간다. 우물이 차오른다. 발버둥 쳐 공기를 들이켜고 싶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가슴까지 차오른다. 갈비뼈가 수압에 눌려 제대로 호흡하기 어렵다.

헤엄칠 공간도 없다. 붙잡을 벽도 없다.


목까지 차오른다.

발끝, 발톱에서부터 힘을 주어 우물의 입구를 향해 고개를 내민다.


턱까지 차오른다.

턱뼈가 부서질 정도로 힘을 주어 입을 벌린다.


수면이 아랫입술을 덮친다.

폐에 물이 들어온다. 위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뿐이다. 붙잡을 손은 없다.


바라본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본다. 수면 아래 입이 파묻힌다. 50원도 들어가지 않는 콧구멍 두 개로 간신히 산소를 들이켠다.


인중을 지나 코끝까지 물이 찰랑인다.


위를 바라본다.

호흡은 이미 포기했다.

눈물이 쏟아진다. 그치지 않고 쏟아진다. 우물이 거의 차올랐다.

그들의 눈물들이 쏟아진다.


하늘을 바라본다. 암흑이다.


그래도, 눈물을 받을 곳이 되어서라도 다행일까.


눈밑까지 차오른다.

차라리 한 번에 종결되면 좋겠다.

마지막 광기에 눈이 퍼뜩 인다.

위를 본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없다. 아무것도.


눈물이 쏟아진다.

눈물을 쏟아낸다.

우물을 채운다.

우물에 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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