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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Mar 20. 2024

이런 미친 감수성도 유전이 되나 봄!

너에게 x3 레버리지 감정을 물려준 것 같구나






"엄마, 우혜진 선생님 이제 못 만나서 아쉬워요."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던 아이가 얼마 전 유치원 방과 후 교사를 그만둔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다.


"응, 엄마도 그 선생님이 하원할 때 항상 웃으면서 배웅해 주셔서 좋았는데 아쉽네......"

"선생님 보고 싶은데, 이제 못 보겠지? 너무 슬퍼......" 아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아니야~ 선생님 이 동네 사시니까 지나가다가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어!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미 '슬픔이'가 들어와 버린 아이의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디 아프다거나 안 좋은 일로 그만두신 게 아니잖아. 진짜 선생님 되고 싶어서 공부하러 가시는 거라고 했으니까, 나중에 합격하면 다시 우리 유치원으로 오시지 않을까?" 잠들기 눈물바다만큼은 피하고 싶어서 나는 필사적(?)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를 달래 보았다.


"웅, 꼭 다시 만나면 좋겠어. 우혜진 선생님, 정말 친했는데......" 그치나 싶었는데 실패다. 다시 바둑알 같이 까만 눈동자 가득 눈물이 고인다. 내복 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는 아이 어깨가 들썩인다.


"원래 사람은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우리도 예전 동네에서 어린이집 다니다가 여기로 이사 오면서 친구들하고 헤어졌잖아. 그때도 너 훈이랑 못 헤어진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그랬는데, 여기 오니까 주아도 만나고 의찬이도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지? 그렇게 헤어짐이 있으면 또 만남이 있는 거란다."


일곱 살(사실, 만 다섯 살) 아이에게 회자정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난감해하며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 애썼다.


"우혜진 선생님도 이렇게 우(가명)가 선생님 그리워서 우는 것보다 꼭 좋은 선생님 되세요~ 하고 기도해 주는 걸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 했더니 이번엔 고개를 끄덕인다.


"네...... 우혜진 선생님, 꼭 좋은 선생님 되길 바래요오응......"


아이아직도 목 저 깊은 곳에서부터 썰물처럼 밀려 나오는 상실감을 침과 함께 꼴깍 삼키며 벽 쪽으로 돌아눕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제발 얼른 잤으면 싶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헤어짐에 무뎌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올려 보면 나도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정든 친구나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일이 참 힘들었었다. 무슨 x3 레버리지 주식도 아닌데 나는 어릴 때부터 남보다 기쁨도 세 배, 슬픔도 세 배로 느끼는 극도로 센시티브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 크고 작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남들보다 몇 배로 깊게 오래 슬퍼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BGM으로 흘러나온 전람회의 <졸업>에 누가 보면 동기 중 누가 하나 먼저 하늘나라로 가기라도 한 것처럼 오열했었다.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 짓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 봐
근심스러운 얼굴로 서로 한 번 웃어보곤 이내 고개 숙이네

우리의 꿈도 언젠가는 떠나가겠지 세월이 지나면
힘들기만 한 나의 나날들이 살아온 만큼 다시 흐를 때
문득 뒤돌아 보겠지
바래져 가는 나의 꿈을 찾으려 했을 때 생각하겠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우리들의 추억들을
그 어린 날들을
......





다시 들어보니 초등학교 졸업식에 틀기엔 다소 딥(deep)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걸 보면 그날의 졸업식 풍경은 이 노래가 있어서 완성되었던 것도 같다. 오랜만에 추억의 노래를 찾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었다. 노래를 끄고 고개를 두어 번 휘젓는다.


결국 우리는 좋든 싫든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이별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 아이가 이제 막 정든 선생님과의 첫 이별을 겪고 상실감과 그리움에 베개를 적시듯, 비슷한 이별 연습을 초등학교에 가서도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 떠나야 하는 이를 마음속에 억지로 붙잡고 괴로워하지 않게 된다. 조금만 아쉬워하다 놓아주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식의 추억에 잠겨있던 몇 분 사이에 아이는 꿈나라로 갔다. 잠든 아이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이 통통한 양볼에 묻어 있다. 이불도 끌어다 다시 잘 덮어준다. 우리 아이가 나처럼 유난스럽게 슬픔을 깊게 오래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저렇게 슬픔푹 빠진 채로 잠들었어도 내일 아침이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깔깔거릴 거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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