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줌 Apr 22. 2024

남편 차에서 뛰어 내렸다

이제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법원에서 조정결정문이 나오면 근처 시청에 가서 이혼신고를 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하면 되고, 그것으로 모든 법적 절차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법의 시간은 끝나도, 현실의 삶은 멈추지 않는다. 소송기간 내내 겁날 정도로 미친 듯이 카톡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고, 어느 날 불쑥 나타나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던 존재가 이혼신고 이후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졌다. 미워할 이도, 원망할 이도 부재(不在).


그렇게 보통 1~2년이 소요된다는 이혼소송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내 경우는 판결까지 가지 않고 9개월 즈음에 조정이 된 케이스였다. 소송기간은 흔히 '진흙탕 싸움'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상대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진짜 전쟁 같은 시간이다. 증거라는 이름의 무기를 준비해 적재적소에 던져 상대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싸움. 장기 전이기 때문에 원고도 피고도 어느 순간 거기에 적응하게 된다. 그렇게 원고와 피고가 되어 각자의 논리와 증거를 들고 다툰다. 괴로운 싸움이지만 어쨌든 끝을 내야 하기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을 열정을 바친 일이 끝났을 때, '허무'라는 녀석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이겼든 졌든 전쟁이 끝난 후 더 이상 에너지를 바칠 대상이 사라진 자리를 기가 막히게 알고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무서운 놈이다. 허무는 내게도 찾아왔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나를 가둬두고 괴롭히던 악마 같은 존재에게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기쁨과 해방감도 잠시, 긴 전투의 시간 동안 억지로 버티던 내 몸과 마음이 파업을 선언했다. 이미 소진된 지 꾀 되었는데 긴장감과 책임감으로 간신히 버텨온 상태였다.


아이가 잠든 밤의 고요 속에 홀로 앉아 나의 현실을 느껴본다. '정말 이혼했구나. 이제 아이와 둘 뿐이고, 나 혼자 저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구나' 소송으로 에너지는 바닥이고 재정상태는 엉망. 위자료와 양육비는 결정이 났지만 언제까지 이행할지 보장이 없는 현실. 내가 버는 돈 만으로는 두 식구 먹고살기 빠듯하다. 그래도 나는 이겨내야 한다. 엄마니까.


허무는 며칠간 호시탐탐 내 마음을 장악을 때를 노렸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이와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찾아왔다. 나는 얼마간 허무가 연기처럼 스르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두었다. 애써 부정하고 물리치려 애쓰지 않았다. '그래. 지칠 때도 됐지' 소송이 끝이 났으니 나의 지친 마음도 잠깐은 껐다 켜 주어야 제정신이 돌아오겠지. 컴퓨터도 과열되면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르듯, 나는 내 마음의 재부팅을 해야 했다.








허무가 머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줄줄이 쌓여 있는 해결해야 할 현생 퀘스트들 덕분이었다. 나는 교통사고의 트라우마를 모른 척 아닌 척 아이까지 태우고 등하원과 출퇴근을 해야 했다.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못 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가장이고 엄마고, 나 혼자뿐이다. 내가 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 비상깜빡이를 켠 채 뒤차 운전자들의 혈압을 올려드리며 퀘스트들을 해냈다. 아이가 세 살 무렵이라 카시트에 앉은 채로 뒤에서 울거나 목마르다고 물 달라고 난리를 치면 혼이 쏙 빠졌다. 어떻게 그 시절에 사고 없이 버텼는지 조상님께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자립과 동시에 운전을 시작했다. 교통사고 트라우마 따위는 명함을 내밀 자리도 허락되지 않았다. 닥치고 해내야 했으니까.


그런데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을 하며 나는 새롭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줄곧 보조석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아빠가 운전하는 차의 보조석에 앉아 있다가 결혼 후에는 남편 차의 보조석에 앉아 있었다. '왜 나는 한 번도 내가 직접 운전할 생각을 못 했을까?' 물론 열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운전은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성향으로 인해 나는 내 삶의 주도권까지 반은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헌납했다. 그렇게 갑을관계가 되어버린 부부관계는 다시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 운전석에 내가 앉아 있다. 운전대를 10시 10분 방향에 맞추어 두 손으로 다부지게 잡고 허리를 곧추세운다. 안전띠 단단히 매고 시동을 건 다음 기어를 D에 놓는다. '부르릉'하고 엔진이 작동하는 소리가 듣기 좋다. 초보운전이면 어때. 내 차를 내가 운전하는 것은 그만큼이 나의 권한이자 책임이기에 자유롭다. 내가 원하는 길로 운전하는 삶, 내가 주도하는 인생이다.


항상 전방 주시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제 이 차에 탄 아이와 나는 한 운명이다. 가장으로서 나의 선택과 결정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소송기간 중 엉망이 된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매월 가계부를 쓰며 자금관리를 시작했다. 한 달의 살림이 눈에 보이게 정리하고 수입과 소비, 저축과 투자의 비율을 분석했다.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충 하다간 나와 아이의 삶 자체가 불안해진다. 절박함이 피곤을 이긴다.


전세 계약과 같은 집안의 큰 일들을 앞두었을 때는 관련된 모든 정보를 찾아 내 것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 관련된 콘텐츠들을 모두 살펴보고 믿을 수 있는 정보들을 취합했다. 주변에 내가 궁금한 것들을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묻기도 했다. 작년 봄 전세 사기가 극성이던 시기에 이사를 해야 했다. 불안을 잠식하기 위해 공부했다. 내가 잘 아는 만큼 불안은 설 곳을 잃고 가정을 지킬 수 있으므로.








이혼 후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한 시도 정신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쓰러지지 않냐고? 쓰러질 시간도 없다. 정신무장을 하면 아프지도 않다. 이혼 후 한 2년은 그렇게 아이와 우리 가정을 지키는 투사의 정신으로 살았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초보운전' 딱지를 대문짝만 하게 붙여놓고 오늘도 무시무시한 도로로 나간다. 벤츠와 BMW가 위용을 뽐내며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고, 페라리와 포르셰가 잘 빠진 몸매를 과시하며 예술적인 차선 바꾸기를 선보인다. 뒤에서 '빵' 하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일단 출발하던 소심한 '초보'가 아니다. 이제는 앞차가 비매너 운전을 하면 '빵' 할 줄도 아는 '성질 있는 초보'다.


남편이 제 멋대로 운전하던 차에서 뛰어내렸다. 나도 다쳤지만 계속 공포와 학대 속에 살 수는 없어 결단을 내렸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화내는 아빠와 우울에 빠진 엄마를 보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아이로 하여금 얼마나 큰 무기력감을 느끼게 할지 알고 있었기에.


이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이혼이 이미 단단히 잘못된 관계를 정리하고 내 삶을 바로잡겠다는 커다란 용기에서 비롯된 일임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그 용기 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과거의 시간을 끝내고, 비로소 새로움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