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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Apr 25. 2024

나는 결국 한부모가족이 되지 못했다

'법정 한부모'란 무엇인가?






이혼신고만 하면 바로 한부모가 되는 줄 알았다. 경력단절 끝에 얻은 직장은 결혼 전보다 급여가 훨씬 적었다. 아이는 만 3세였고, 소송 중 양육비를 전혀 못 받고 내가 번 돈으로 생활비와 종양제거수술비까지 냈으니 적자였다. 이런 내가 한부모 지원혜택을 받을 수 없으리라고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았다.


소송이 끝나자마자 시청에 가서 이혼신고를 하고, 한부모 관련 제도를 안내받고 싶다고 말했다. 민원실 직원이 약간 당황한 듯 전화를 넣더니 2층 가족복지과로 올라가 보라고 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갔다.


'이제 이 불안정한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겠지!'


시청에 오기 전에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본 바로는 자녀양육비로 월 20만 원씩 나온다고 쓰여있었다. 아이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정기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면 소액이라도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LH 임대주택도 1순위가 되면 주거안정도 되고, 아이가 커서 대학에 때도 특별전형이라는 기회가 하나 생긴다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겠나 싶었다.


커다란 회의용 책상 한쪽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종이컵에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주며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삼키며 기다렸다.


'이제 자존심이고 뭐고 현실이야. 다른 생각 말고, 아이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좋은 제도의 도움을 받자. 그걸로 이 위기를 지나가보자. 나중에 내가 안정되고 아이도 자라면 그때 더 어려운 이웃에게 오늘 받은 것을 돌려주기로 하자.' 하며 나름대로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


십여분의 기다림 뒤, 젊은 여직원이 두꺼운 책자를 가슴에 안고 다가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한부모 가족 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더니 책자를 펴고 이리저리 살폈다. 포털 검색결과 대로 월 20만 원의 자녀양육비와 중고등학생 학용품 지원이 있다고 했다. 아이가 만 5세 이하라서 자녀양육비도 추가로 5만 원씩 더 나온다고 했다. 가슴이 뛰었다.


"지금 일은 안 하시죠?"

"네? 일 하는데요."

"아... 다른 재산은요? 차 없으시죠?"

"출퇴근용 경차 하나 있어요."

"아... 그러시면 어려우세요. 거의 일을 안 하시는 경우에만 해당되세요. 이게 기준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이다 보니 아르바이트하시는 정도 아니면 심사 넣어도 다 안되더라고요. 특히 10년 안된 차가 있으면 경차라도 소득인정액이 높아져서 신청이 의미가 없다고 보셔야 해요."

"네? 아이 등하원이랑 출퇴근하려면 꼭 필요한 상황이어도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정해진 기준대로 집행할 뿐이에요."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 '일'을 안 하고 '차'도 없어야 '진짜 한부모'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일까. 한부모인 듯 한부모 아닌 한부모 같은 나?! 머릿속은 대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그 힘든 소송기간 중에도 법적으로 신고만 하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는 튼튼한 그물이 우리를 받쳐주어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버텼다. 그런데 그 희망의 그물이 눈앞에서 찍 하는 새된 소리를 내며 찢어발겨지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 줄이야.


'일자리' 없이 '자차' 없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그것도 혼자 기르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필수적인 그 두 가지 때문에 나는 진짜 한부모가 아니라고 신청조차 할 수 없단다. 너무 허탈해서 말도 안 나왔다. 심사도 넣어보나 마나라며 100% 안 된다고 말하는 직원이 어찌나 얄밉던지. 그녀는 법이 정한 기준대로 안내를 해주었을 뿐인데, 나의 황당하고 허망한 눈빛을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나도 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님을. 기준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은 것이었다.








성큼성큼 갔다가 터덜터덜 돌아왔다. 가슴 펴고 갔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왔다.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이 내가 시청에 찾아가기 전에 보았던 것처럼 매년 한부모 지원제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홍보기사였다. 소득기준을 완화해서 더 많은 한부모가족이 혜택을 보게 되었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 모든 제도의 대상이 '법정'한부모라는 것은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한부모가족 증명서'라 단어가 눈에 띄었다. 한부모가족이면 가족관계증명서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왜 별도의 증명서가 있는지 의아했다. 알고 보니 이 증명서는 모든 한부모가족이 받을 수 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법정한부모'에게만 증명서가 발급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한부모가족 내에서도 다시 한번 소득을 기준으로 계층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한부모가 되는 순간 소득이 반토막이 나는데, 그 안에서 다시 '내가 이 만큼 가난해요'를 심사를 통해 인정받아야만 '법이 인정하는 진짜 한부모'가 될 수 있는 현실. 이것이 대한민국 한부모 지원제도의 현주소이다. 법정스님이 이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그 자비 없음에 통탄하셨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일을 하고 차가 있다는 이유로 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한 한부모가족이 되었다. 분명히 한부모인데 법으로는 한부모가 아닌 기형적인 태. 연말정산할 때 부녀자 공제보다 50만 원 더 공제해 준다는 딱 하나의 혜택을 제외하고는 동 주민센터나 시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버팀목 전세대출을 이용할 때도 분명 서류에는 한부모가족이 우대금리 대상으로 되어 있었지만, 나는 법정한부모가 아니라 증명서를 제출할 수가 없었다. 은행직원도 매뉴얼에 '법정'이라는 말은 없다고 될 거라며 본사에 전화를 걸어 열심히 알아봐 주었지만, 결국 나는 해당 우대금리를 받지 못했다. 나는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한부모다. 나처럼 기준 바로 위에 있는 수많은 한부모가족들 법의 보호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가장 긴급한 소요부터 우선적으로 채우는 것은 행정의 당연한 생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층위에 따라 어느 정도 그다음 단계에 해당되는 제도 필요하지 않을까? 1층만 있고, 2층, 3층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각자도생 하라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게다가 그 소득기준이라는 것이 터무니없이 낮다. 내가 이혼신고를 했던 2022년 당시 시청직원이 알려준 소득금액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90만 원 언저리였던 것 같다. 찾아보니 2024년 소득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63% 이하로, 2인 가구 기준 약 232만 원, 3인 가구 기준 약 297만 원이라고 한다. 매년 커버리지가 넓어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실제로 유의미한 확대인지 검토해 볼 일이다. 왜냐하면 물가상승률에 대한 언급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매년 가파른 물가상승률에 대비해 보았을 때 현상유지 수준이라면 그 확대는 속 빈 강정불과한 것이다.


한국의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랭킹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 땅의 한부모 인구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인 예산의 파이도 키우고 기준도 현실화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법정한부모' 기준 바로 위 어딘가에서 혼자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장들이 많다. 한부모라는 낙인도 무거운데, 그 안에서도 다시 계층을 나누고 소득심사를 넣어 자신의 빈곤을 증명하게 하는 잔인한 제도는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통계청에 들어가 찾아보니 2015년부터 통계자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공개되어 있는 가장 최근자료는 2022년 자료로 총 한부모가구수는 1,494,067 가구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전국 한부모가족 가구주 3,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지원을 받는 한부모 비율은 54.4%다. 이를 통계청에서 찾은 150만 가구에 대입해 보면, 약 81.6만 가구가 법정한부모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68.4만 가구는 한부모이지만 한부모가 아닌 채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에 따르면 한부모의 평균연령은 43.6세이며, 대다수가 이혼 한부모(81.6%)평균 1.5명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 이들의 월평균소득은 약 245.3만 원으로 전체 가구 소득(416.9만 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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