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니버서리 Apr 18. 2024

두둥! 전남편이 나타났다

나는 너의 현실이야






내 인생 진짜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불과 며칠 전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남편을 용서한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이제 그와 있었던 일들을 과거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의 접시에 아직 묻어 있던 억울함, 슬픔, 절망감이라는 이름의 기름때를 뜨끈한 물로 깨끗이 씻내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고 함께 아파하고 때로 당사자인 나보다 더 화내주시며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 마음들 덕분에 내가 느낀 감정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나만 이렇게 유별나게 고통스러운 걸까 스스로의 감정까지 의심하던 내게 '네가 예민한 게 아니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정말 애썼다 그리고 잘 해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나 싶었던 전남편은 아직은 내게 잊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3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진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 문자를 눌러보니 '번거롭게 할 일이 생겼어'로 시작하고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첫 번째 칸에 들어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문자를 열어보았다.


개인회생 진행 중이라고 했다. '개. 인. 회. 생? 이거 설마 파산했다는 말인가?' 낯선 단어에 눈이 커졌다. 다음 내용을 빠르게 스캔했다. 양육비를 법원에서 직접 지급하겠다고 해서 채권자인 내 계좌정보와 인감증명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첨부된 사진은 '양육비채권자계좌번호신고서'라는 긴 이름의 A4 한 페이지짜리 서류였다. 


모든 서류를 다음 주 월요일까지 보내달라고 했다. 문자를 받은 게 목요일이었으니 금요일까지는 인감도장을 파고 주민센터에 가서 인감등록을 한 뒤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하필 업무도 바쁜 날이었는데 갑자기 조급해졌다. 전남편은 자기가 없는 내 인생이 심심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양육비를 보내줘야 하는 마지막 주에 양육비 대신 처리할 일만 잔뜩 안겨주었다. 그렇게 쉽게 과거가 되어줄 생각은 없었나 보다. '나 여기 있지! 벌써 과거로 보내지 마~ 나는 아직 너. 의. 현. 실. 이. 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당장 이번 달 양육비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다음 달 중에 보내겠단다. 그걸 왜 이제서 얘기하냐니 변호사가 지금 알려줬단다. 법원에서 미성년자 보호 취지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며 외려 볼멘소리를 한다. 일단 알았다고 문자를 보내고 몇 분 간 변기에 앉은 그대로 멍해져 버렸다.


사업한다더니 개인회생은 무슨 소리며,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그래서 얼마 전에 연락했을 때 아이와 면접교섭을 못 한다고 했던 건지......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지만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확실했고, 우리는 더 이상 부부도 아니니까. 냉정하게 말해 '남이사' 하고 말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아이 양육비가 문제였다. 그가 파산을 했다면 양육비의 안정적 지급이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곧 우리 두 식구의 예산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였다. 좀 편안해지나 싶었던 내 삶에 다시 붉은색 경고등이 켜졌다.


검색엔진에 '개인회생 시 양육비'를 검색해 보았다. 2018년 1월부터 달라진 개인회생제도 개선안이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그 주요 내용이 바로 양육비를 회생절차에서 최우선으로 변제해야 채권인 '개인회생재단채권'에 포함시켰다는 거였다. 양육비가 개인회생재단채권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채무자가 갚는 돈에서 법원이 양육비를 우선적으로 떼내어 양육친(채권자)에게 지급한다는 뜻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기르고 있는 양육친은 3년의 회생기간 동안 법원으로부터 매월 양육비를 안정적으로 지급받고 채권자로서 채무자의 재산상태를 살펴볼 수도 있게 된다고 했다. 다만 가정법원의 양육비 기준표에 비춰 양육비가 과다할 경우에는 감액심판을 통해 금액을 일부 조정할 수도 있고, 채무자는 기본 생계비를 제외한 변제금으로 양육비가 지급되어 생계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회생절차를 이행할 다고 쓰여 있었다.


양육비채무자의 개인회생 기간 동안 채권자가 양육비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일단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기한 안에 얼른 신청해야겠다 싶었다. 법원의 시계는 천천히 가니까 신청 후 실제 지급까지 얼마나 걸릴지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다.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에 전화를 해서 준비물과 소요시간 등을 문의했고, 근처에 인감도장을 팔 수 있는 도장집을 수소문했다. 나는 그날 저녁 서울 가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래서 주소지 주민센터에서만 가능한 인감등록을 하려면 목요일인 오늘 주민센터가 문을 닫기 전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반차를 쓸까 고민하던 찰나, 이혼 선배이자 싱글맘 동지 민하(가명)가 생각났다. 나의 이혼과정에서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듣자마자 '인감을 어디에 쓸 줄 알고 그 중요한 걸 덜렁 보내려고 하냐'며 펄쩍 뛰었다. 회생신청을 한 것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하라고 했다. 민하의 말에 아차 싶었다. 전남편의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변호사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직접 통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자기는 변호사가 아니고 그의 사건을 담당하는 법무법인 직원이라고 했다. 그녀를 통해 전남편이 개인회생을 신청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전남편에게 인감증명을 보내지 않고 법인에 직접 제출할 수 없는지 물었다.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서 꼭 인감증명이어야 하는지 문의했다. 내가 직접 가서 친필로 서명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법원에서는 인감증명을 요구하긴 했지만 직접 오신다면 신분증 사본으로 갈음해 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 직접 부딪혀보니 그렇게까지 조바심 내며 나의 소중한 하루를 망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차피 서울에 갈 일정이 있으니 직접 방문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해야 할 일이 확 줄어들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전남편이 예고 없이 투척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갑작스러운 문자를 받고 얼마간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했어도 민하의 조언을 듣고 금세 이성을 되찾아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므델리카님이 <당신은 유책배우자! 그럼 난 무책배우자?>에 남겨준 댓글처럼 내가 가는 길에 불쑥 나타난 '돌부리를 쑥 뽑아 저기 지구 밖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독자님의 신묘한 힘!)






그렇게 나는 태어나 두 번째로 법무법인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은 약 3년 전 이혼소송의 의뢰인으로서 변호사 상담을 받으러 갔었고, 두 번째는 양육비 채권자로서였다. '이혼하게 좀 도와주세요'에서 '양육비는 여기로 보내주세요'가 되었으니 그새 나와 그의 자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금요일 오전 신분증을 챙겨 집을 나섰다. 본가에서 법인까지는 한 시간 남짓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는데, 그렇게 심란하지 않았다. 첫 번째 방문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종양 제거수술 직후 의뢰인으로 찾아갔을 때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채 거죽만 남아 간신히 걸어 다니는 딱 좀비 같은 모습이었다. 목에는 아직 아물지도 않은 칼자국이 선명했고, 내가 겪은 일들을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서 시원하게 대답도 잘 못했었다. 내 존재가 꺼져가고 있음을 꺼지기 직전에 깨달았기에 남은 그 작은 불씨를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고 거의 기듯이 변호사를 만나러 갔었으니까.


법인은 서초역과 교대역 사이의 빌딩 9층에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금요일이었다. 우산을 받쳐 들어도 바람에 날려 옷을 다 젖게 하는 비였다. 나는 조금 긴장했지만 담담하게 걸었다. 변호사, 법무사 등 법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열리고 입구에 앉아 있는 직원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양육비채권자 서류 작성하러 왔는데요" 하자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두 평 정도 되는 방에는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의자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게 놓여 있었다. 안쪽 자리에 앉아 있으니 금방 직원이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제가 통화했던 박문정(가명) 대리입니다. 많이 놀라셨죠?" 삼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녀는 친절하게 제도의 취지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스캔을 위해 신분증을 그녀에게 전해주고 서류에 계좌정보를 기입했다. 개인정보라 그런지 전남편의 채무 금액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업하면서 돌려 막기를 하다 펑크가 난 것 같다고 했다.


서류작성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박문정 대리는 개인회생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을 카톡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다시 직접 전남편에게 양육비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이혼사건도 담당하는 법무법인이라 그런지 별 이야기 안 해도 상황을 이미 아는 사람 같았다. 센스 있는 담당자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법무법인에서 해야 할 일을 정말 회사에서 업무 처리하듯 해내고 나왔다. 그새 비가 그쳐 있었다. 뭔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만큼 단단해졌구나. 일단 3년간은 양육비 밀릴 걱정은 내려놓아도 되겠구나'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돌았다. 근처 맛있는 가츠산도집을 찾아갔다. 제주도 흑돼지 안심가츠와 따뜻한 라테로 허기진 속을 만족스럽게 채워주었다. '잘했어, 고생했어' 하고 스스로에게 주는 토닥토닥 소비였다.


박문정 대리 말로는 이 과정은 2~3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고, 결정 후 두세 달치 양육비가 일시에 지급될 거라 했다. 전남편에게 양육비는 끊기면 안 되니 기존대로 매달 보내고 채권자가 법원에서 일시지급받으면 다시 돌려받으라고 안내했다고 했다. 전남편은 '그건 제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논의해봐야 한다'라고 했다는데, 내게는 그런 말을 적이 없다. 나와 논의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와 한다는 뜻일까. 


3년의 회생기간이 끝난 뒤의 상황도 안갯속이다. 전남편이 회생에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해도 그 사이에 내게 직접 송금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고 아이와 접견을 안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여전히 수만 가지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나와 다르다. 아직 알 수도 없는 실체 없는 불안감에게 잡아먹히지 않다. 그보다는 나와 아이의 '지금. 여기. 우리'가 가장 중요하니까. 불안의 그림자가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가리지 못하도록 단호히 거절할 거다. '너 하나도 안 무섭거든!'



 



 

이전 15화 X 같은 전남편, 어떻게 용서하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