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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Apr 08. 2024

당신은 유책배우자! 그럼 난 무책배우자?

당신의 생각은, 몇 대 몇!





이혼 소송 중에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는 일방을 일컫는 법률 용어가 있다. 바로 '유책배우자'라는 말이다. 혼인 파탄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는 뜻이다. 폭력, 외도, 도박, 마약 같은 확실한 혼인파탄 사유가 아니더라도, 내 전남편의 경우처럼 배우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도 유책배우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쪽은 '무책배우자'일까?
나는 정말 이 이혼에 책임이 없을까?




이 물음의 끝에 내가 찾은 답은 '무책배우자는 없다'는 거다. 성인인 두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결정했다. 상대가 의도적으로 연기를 했든 사기를 쳤든 안타깝게도 거기에 속은 쪽에게도 책임은 있다. 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억울하다. 사랑을 맹세하는 전남편의 말들을 철썩 같이 믿은 대가가 배신이었는데, 내가 피해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가장 나를 아껴줄 거라 믿었던 사람이 내가 아프고 약해졌을 때 나를 길에다 내팽개쳤다. 그런데도 내게 책임이 있다고?


소송과정 중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분이 처음에 잘못했을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었어요." 처음 임신한 나를 태우고 과속운전을 하며 겁을 주었을 때, 처음 젖병소독기를 집어던져 부수었을 때, 처음 큰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조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그런 처음의 순간들에 단호하게 "하지 마" 하고 의사를 표현했어야 했다는 말이리라. 그렇게 잘못된 행동을 해놓고도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거나 내 핑계를 대며 가스라이팅을 시도했을 때도 강하게 "다신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돼" 하고 못을 박았어야 했다.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래서 내가 더 참고 기다려주면 달라지겠지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수용적이었던 내 반응이 그의 문제를 더 키운 꼴이 되었다. 그가 더 세게 말하고 언성을 높이면 자기 마음대로 아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강화를 시킨 것은 오히려 나였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강화되며 우리의 관계는 갑을관계를 넘어 주인과 노예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남편에게 넘겨주었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 거의 모든 것을 남편의 결정에 맞춰 살았다. 나의 생각이나 기호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속였다.


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만족해하는 그를 위해 나는 들러리를 자처했다. 그것이 양보이자 배려이고 아내의 사랑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언젠가 그도 철들면 마음도 알아주고 고맙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나는 왜 그리 굴종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았을까. 그것이 출산 후 무섭게 분비되던 호르몬 때문이었는지 경력단절로 바닥을 친 자존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한 마디로 정리해 본다. 초기에 단호하게 대응하는데 실패했고, 싸우기 싫다는 핑계로 그에게 잘못된 강화를 시켰으며, 반은 자발적으로 들러리를 섰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기를 포기했던 '내 몫의 책임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함께였던 시간을 억지로 떠올려본다. 한때 내 사람이라 믿고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그는 사랑의 상대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인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서른둘 가을에 만나 겨울에 예비 시댁에 첫인사를 드리고 이듬해 1월에 상견례를 했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빨라도 되는 건가 하면서도 '이만큼 내게 잘해주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에라 모르겠다. 다들 이렇게 남자 쪽에서 서두를 때 한다더라' 하며 회피했다. 내가 주인공이고 당사자인데 진지하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결혼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반쯤은 나이에 떠밀려(-서른셋이 뭐가 많다고!-) 반쯤은 그가 퍼붓는 달콤한 사랑의 말에 취해 우습게도 스스로를 가치를 후려쳐 헐값에 내놓았다.




그는 거짓말쟁이였다.

내게 약속한 말들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나는 멍청이였다.

그의 말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 관계는 파탄 났다. 그 과정에  잘못은 없어도 책임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임을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인다. 어쩌다 운이 나빠서 이런 우라질 놈을 만나 내 인생이 고달파졌노라고 모든 것을 전남편 탓으로 돌리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피해자일 뿐'이라고 회피하는 순간, 정말로 피해자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그러면 슬픈 운명을 탓하며 스스로를 동정하거나 경멸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불쌍해요' 라며 아픔을 파는 포르노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종양처럼 아프게 그를 떼어내고 이제 겨우 자유를 찾아놓고, 이번에는 내가 새로운 가해자가 되는 거다. 일종의 자해이 영혼을 팔아 동정을 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몫의 책임을 인정하고 성찰하여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표로 삼고자 한다. 그래야 원망의 늪에 빠지지 않고 두 발을 끌어당기는 뻘을 뿌리치고 나와 마른땅이 나올 때까지 당당히 전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피해자'라는 좁고 외로운 방에 나를 가두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의 만행에 대해 늘어놓고 성토대회를 열 생각은 없다. 흉터는 남았어도 처에는 딱지가 앉았고 감정의 불길도 사그라들었다. 그를 더 이상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인연이 딱 거기까지였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이미 기울어진 잘못된 관계에서 그때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쯤 더 깊은 수렁에 빠져 괴로워하며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게 되었을 테니까.


차분히 그의 몫과 나의 몫에 대하여 생각다. 소송이 끝난 마당에 잘잘못을 가려 무슨 실익이 있느냐고? 4년의 결혼생활과 1년의 이혼과정까지 도합 5년이라는 내 인생의 짧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벤트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아직 거기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스스로를 위한 일이다. 혼인파탄이라는 결과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낼 때 비로소 나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 것이다. 


'책임'은 '권한'다. 회사에서 부서장은 결 권한을 갖는다. 자신이 결한 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부서원을 대신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바꾸어 말하면 권한을 갖는 만큼 책임이 뒤따르고 책임을 감당하는 만큼 권한이 생긴다는 뜻이다. 비단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만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책임을 인정하자 놀랍게도 그만큼의 권한이 따라왔다. 도망치지 않고 아이와 가정을 책임지기로 마음먹은 만큼 나는 아이와 내 가정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어디에 어떻게 살지(주거환경), 아이를 어떤 유치원과 학교에 보낼지(교육) 등 생활에 직결되는 주요 의사결정을 나 스스로 하고 있다. 소소하게는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나들이(체험)를 가서 무엇(메뉴)을 먹을지도 아이와 함께 결정한다. 우리 집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바로 내가 된 것이다.


자녀의 앞으로의 인생에 대하여 나는 주양육자로서 엄마로서 또 아빠대행까지 겸임하여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무거운 반려자들을 기꺼이 내 배낭 안에 챙겨 넣는다. 이제 내가 걸어갈 인생길은 800km에 달하는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El Camino de Santiago, 스페인의 유명 성지순례길)가 될 것이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숨이 턱에 차올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이 배낭을 쉬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두 손으로 배낭끈을 더 꽉 붙들고 원정대의 대장으로 아이와 함께 뚜벅뚜벅 완주해 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지칠 때, 우리 꼬마 부대장이 내 키만큼 자라 달라진 눈높이로 며 엄마의 배낭을 너끈히 들어줄지도 모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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