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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줌 Apr 03. 2024

송중기·송혜교도 아닌데 조정이혼이라니

이혼소송 톺아보기(2)






임시양육자지정과 첫 면접교섭


끔찍한 소송 기간이었지만 한 가지 내가 분명하게 믿고 있는 진실이 있었다. 남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내가 아는 그는 절대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한다. 이 긴 싸움을 계속해나갈 끈기가 그에게는 없다. 지금은 저렇게 지구 끝까지 쫓아올 기세로 카톡 폭탄을 쏘아대고 있지만 분명히 먼저 지칠 거다. 이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끝이 보이지 않던 결혼생활의 괴로움에 비하면 소송은 끝이 있는 괴로움, 뚜렷한 실체가 있는 괴로움이었다.


이미 봄부터 생활비나 양육비를 받지 못했기에 나의 재정상태는 좋지 않았다. 소송 6개월이 다 된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낯선 지방의 추위에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길고 지난한 싸움에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 누나는 지금이 내 인생 최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이 모양이 된 누나지만 네가 멋지다고 존경한다고 했던 저력이 분명 내 안에 있다고 믿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보려고. 밑바닥에서부터... 쓰다 보니 왜 울컥하냐ㅋ 내가 주도하는 삶으로 갈 거야.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된다. 이제 진짜 사는 것 같아."


"본가 가는 지하철인데 눈물 나게 하시네. 생각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살고 싶은 대로 그렇게 살아."



2022년 1월 1일 새해 첫날 남동생 이(가명)와 주고받은 카톡이다. 인생의 최저점에 가면 본인은 알 수 있다. '여기구나' 하고. 그러면 기뻐하라. 이제 발바닥에 온 힘을 집중해서 있는 힘껏 바닥을 차고 올라가면 된다. 나는 그랬다.


아이가 잠든 매일 밤 가정을 책임지고 살아나가기 위해 공부를 했다. 경제와 금융에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유튜브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어쩌다 남편과 같은 사람과 잘못된 관계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고통스럽지만 깊이 파고들었다. 심리학 서적을 탐독하고 각종 채널을 뒤지며 그가 보인 이상한 행동들의 실체와 내가 왜 그런 관계를 쉽게 놓지 못했는지, 어째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웠는지 조금씩 깨달아갔다.


남편이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는 바람에 소송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결국 변호사와 상의 후 임시양육자지정 사전처분을 넣었고 해가 바뀐 22년 1월 말부터 매월 7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받게 되었다. 요구한 금액보다 적었지만 정기적으로 입금되는 양육비는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전남편과 아이의 면접교섭도 시작되었다. 아빠와 아들이 약 8개월 만에 만나는 거였다.


사전처분은 부모의 이혼 소송 기간 동안 자녀 양육에 공백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양육권을 두고 다투는 경우 자녀에게 그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임시양육자를 지정한다. 동시에 비양육자는 임시양육비를 지급하고 자녀와 면접교섭을 하도록 명령한다. 강제집행력은 없지만 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있고 비이행시 재판에 불리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처분이다.


면접교섭이란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비양육친이 자녀와 만나는 것으로 비양육친의 권리이자 자녀의 권리이다. 직접 만남 외에 전화통화나 서신교환 등의 방법도 가능하다.


그런데 첫 면접교섭에서 남편은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놀이터에서 아빠를 본 아이가 있는 힘껏 도망쳤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다. "아빠랑 안 갈래!"를 외치며 계속 달리는 아이를 전남편이 쫓아가면서 뜻밖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길 건너에서 보면 두 사람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아름다웠던 그 장면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었다. 도망치는 아이와 따라가는 아빠 두 사람 모두 울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적극적인 거부에 그는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돌아서는 그의 안경 렌즈에 뜨거운 김이 서려 있었다.


남편이 간 뒤 놀란 아이를 안고 나도 참았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은우(가명)야, 아빠랑 가는 게 아니고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왜 도망갔어......" 그러자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놀란 아이 따라 울며 "미안해요, 엄마.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 엄마가 울자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줄로 여기고 있었다. "아니야, 은우야... 너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돼. 네 잘못이 아니야. 엄마도 이제 울지 않을게." 나는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입꼬리를 올려 크게 웃어 보였다. 우리는 한바탕 소동으로 소진된 기력을 갈비탕으로 보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가사조사 직전, 마침내 조정결정


가사조사지 가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 덕분에 교육은 비대면으로 동영상 시청 후 소감문 제출로 대체되었다. 얼마 뒤 있을 가사조사관의 양육환경조사 방문을 대비해 변호사가 요청한 자료들을 작성해 보냈다. 주로 양육환경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와 어린이집의 거리, 보조양육자의 존재, 양육을 증명하는 사진 등을 정리해서 사무장에게 보냈다. 아이를 계속 양육해 온 내 쪽이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혹시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되었다.


그렇게 심란하던 2월 중순의 어느 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것을 봐서인지 접견 때 자신을 거부했던 모습 때문인지 드디어 우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가사조사 단계까지 가고 싶지 않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이혼도 해주고 위자료로 주겠다고 했다. 변덕스러운 그가 마음을 바꾸기 전에 얼른 조정 신청을 넣고 조건을 협의했다. 나도 양육비를 더 요구하지 않고 임시양육비 그대로 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소송이 길어져서 좋을 사람은 없었다. 



 '...... 미안하고.'


 '나도 고마워.'



마지막에 주고받은 이 짧은 문자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사랑했던 시간들과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던 그가 남긴 미안하다는 문자는 그래도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나는 (이제라도 놓아주어) 고맙다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21년 6월 14일의 진술서로부터 22년 3월 15일의 조정결정문까지 몇 장의 서면을 남기며 헤어졌다. 9개월 만이었다. 드디어 이혼, 아니 그로부터의 해방이었다.



* 조정이혼

가정법원의 조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이혼.
소송 중 원고와 피고가 이혼에 대해 합의한 경우 소송을 중단하고 조정 절차를 밟는다. 조정조서에는 재산분할과 양육권, 양육비, 면접교섭의 세부내용 등이 포함되는데, 이는 이혼소송의 확정판결문과 동일한 법적 효력이 있다. 협의이혼의 경우 추후 위자료나 재산분할 재청구가 가능한 반면, 이혼조정은 번복이 불가능하다.




내 조정조서의 첫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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