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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Apr 11. 2024

내 남편이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라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최면






어떤 독자분이 내 글 <나는 학대의 공범입니다>댓글을 달아주었다. '소시오패스' 그 자체고. 사이코패스만큼은 아니지만 타고난 '악인'이라는 거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면 소시오패스(sociopath)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전 인구의 4%나 된다고 한다. 25명 중 1명. 평범한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만큼 유전 영향이 크지는 않지만 아주 어린 3~4살 무렵 유년시절의 방임이나 학대, 또는 과잉보호에서 비롯된다고 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가 전남편에게서 느꼈던 소시오패스적인 특성들이 떠올랐다. '사람을 도구로 이용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 사람의 측은지심과 착한 마음을 이용한다. 타인의 권리나 안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되느냐만이 판단의 기준이다. 타인이 곤경에 처해도 공감하지 않고 경제적 손실이나 자신의 처세부터 생각한다' 등등.


소시오패스 같은 면도 있었지만 내가 나름대로 분석했을 때 전남편과 가장 가까운 것은 '나르시시스트'였다. 유튜브 <토킹 닥터스, 토닥>에 자세히 나온다.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란 자기애성 성격 특성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데 순히 자기애가 강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대단하게 과장하는 이면에는 텅 빈 정신세계가 있다. 그들의 정신은 공허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존감의 안정성이 떨어져서 좋을 때는 끝도 없이 치솟다가 사소한 타격이라도 입으면 바닥에 곤두질치는 식으로 변화가 심하다. 전남편의 주기적인 감정기복이 설명되는 순간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아상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에 타인을 믿지 않는다. 사람을 조종하고 공격할 때 상대가 괴로워하거나 화내는 반응을 보며 자신의 불안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해소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다. 이는 일시적이므로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 대략 석 달에 한 번, 나중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별 것 아닌 일로 꼬투리를 잡아 나를 괴롭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도대체 그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는데,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공부하며 그 근본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봐야 그의 불안이 해소되었던 것이다. 이런 파괴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 사회로부터 격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해 나르시시스트는 범죄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위험하다. 자신의 감정은 있지만 타인의 감정은 없고, 자신과 대립하면 누구든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다. 불행하게도 공감능력이 높고 자신보다 타인의 감정과 의견을 우선하는 사람, 소위 '에코이스트(echoist)'들이 나르시시스트들의 덫에 잘 걸린다. 나르시시스트들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잘 느껴서 이들에게 휘둘리기 쉬운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두려움이나 공포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상대방에게도 협박과 조건적 사랑으로 공포심을 조성한다. 내가 교통사고의 기억으로 차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과속을 했던 일과 툭하면 '이혼'이나 '자살'을 입에 올리며 협박했던 일이 떠올랐다. 공포심을 이용해 나를 조종했던 것이 이제 명확히 보인다.


이들의 특성으로 제시된 러브바밍(love-bombing), 투사, 피해의식, 흑백논리, 사람을 등급 매기는 것, 가짜 자아와 병적인 거짓말 모두 전남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자신이 꾸며낸 거짓을 정말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점까지. <정서우의 조금 특별한 사이>나르시시스트의 주요 특징 5가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 연애 초반 뜨거웠던 그의 애정공세에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랑에 빠졌다. 정말 융단폭격을 하듯 애정을 쏟아부었는데, 그것을 뜻하는 '러브바밍'이라는 용어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파고 들어가 그에게서 벗어나려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평판, 돈, 공권력 같은 것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변호사라는 공권력을 상징하는 존재가 우리 사이에 등장하자 그에게 매우 큰 효과가 있었다. 유튜브 <서람 TV>를 통해 배운 회색돌 기법(gray rock)을 나는 실제로 적용했다. 소송 기간 동안 전남편이 카톡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말들을 계속 보냈지만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나는 별 관심이 없다'는 스탠스를 유지했다. 답도 시간 차를 두고 간결하게 했다. 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를 두려워한다는 것도 들키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나를 더 이상 조종할 수 없다'는 침묵의 메시지를 단호하게 지속적으로 보냈다.


물론 정신의학과 의사도 정신분석학 전문가도 아닌 내가 경험과 약간의 정보만으로 그가 소시오패스인지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확언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어떤 전문가보다도 그를 가장 치열하게 연구한 사람이 바로 그의 아내였던 '나'라는 사실이다. 그가 제 발로 정신의학과를 찾아갈 가능성은 없다. 만에 하나 우연히라도 병원에 갔다가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다 해도 그것을 인정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어느 쪽이든 그는 평범한 보통의 사람은 아니었다. 성격장애를 갖고 있었다고 그가 내게 가했던 정서적 학대와 부당한 대우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이다.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하므로.


나는 그래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라고 의식적으로 머리에 새기고 산다. 소송을 시작하고 약 2년은 감정을 느낄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런데 소송이 끝나고 이혼 3년 차가 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었다. 그러자 언 강이 녹듯 내 마음이 다시 원래의 사람 좋아하고 잘 믿는 나로 자꾸 돌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조심하려고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나 같은 부류를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는 에너지 뱀파이어들,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다시는 먹히고 싶지 않다. 그래야 나와 아이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악인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을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

그러니 누구도 믿어선 안 돼.

선한 얼굴 뒤에 다른 모습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



인간 자체에 대한 배신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향하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 마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처연하다.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물살의 흐름을 온몸으로 맞아야 겨우 제 자리를 보전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다시는 그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선함을 애써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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