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줌 Mar 17. 2024

나는 학대의 공범입니다

별똥별을 지키는 은하






그는 친부면서도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질투했다. 자신만이 독점해야 하는 애정과 관심을 아이가 빼앗아갔다고 느꼈다. 그 서운함을 핑계 삼아 나를 들볶곤 했다. '네가 예전처럼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또 모든 것은 내 잘못이 되었다.


남편이 육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에 나는 늘 지쳐있었다. 계속 놀고 싶어 눈꺼풀 위로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려 애쓰던 아이가 드디어 일정한 소리로 작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거의 밤 11시가 되어서야 대충 씻고 반 송장의 몰골로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 내게 남편은 볼멘소리를 했다. 신혼 때처럼 마사지를 해주지 않는다며 사랑이 식었다고 했다. 나는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그는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어서 나를 벌주는 방법으로 말도 못 하는 아이를 타깃으로 삼기도 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날의 일이 내게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이를 낳고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느라 흰머리가 여기저기 삐져나오고 흉하게 자란 머리를 좀 다듬고 싶었다. 주말에 집에 남편에게 잠시만 아이를 봐달라 하고 미용실로 향했다. 출산 후 아이와 거의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선지 미용실 가는 길이 꿈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날 나는 머리를 하는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초조해했다. 전에는 머리를 살짝 다듬기만 해도 기분전환이 되었는데, 그날따라 대충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었다. '아이가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애아빠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며 스스로를 달래 봐도 이상하리만치 그날의 미용실은 즐겁지가 않았다.


2시간쯤 걸려 머리가 다 됐고, 나는 집에 가스불 안 끄고 나온 여자처럼 걸음을 재촉해 집에 돌아왔다.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신생아가 있는 집답지 않게 아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낯선 고요가 왠지 섬뜩했다. 현관 가까이에 있는 작은방과 거실을 지나 있는 안방 문이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신발을 벗고 몇 발자국 들어가자 안방 쪽에서 텔레비전 소음이 들려왔다. 남편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느라 내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아기 침대가 있는 작은방은 잘 닫아두지 않는데 왜 닫혀 있나 의아해하며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음 순간 눈에 들어온 풍경은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참담 그 자체였다. 아이가 온몸에 땀범벅이 된 채로 침대에 '묶여' 있었다. 속싸개와 거즈 이불이 압박붕대처럼 침대 양쪽 난간의 나뭇살들을 교차하며 작은 몸뚱이를 꼼짝 못 하게 동여매고 있었다. 나는 몇 초간 온 우주가 멈춘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아이 코 밑에 손을 갔다 대고 가슴이 오르내리는지 지켜보았다. 여리고 따스한 숨이 손가락 끝에 느껴지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후 하고 몰아쉬었다.




아이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결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소진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온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온 소멸 직전의 별처럼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충격에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묶고 있는 속싸개와 이불을 차례차례 풀어주었다.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버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나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붙들고 최대한 조용히 작은 방을 빠져나와 소리가 나지 않게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깔깔거리는 예능 프로그램의 소리가 시끄럽게 새어 나오는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어 왔어?" 한쪽 팔로 뒷머리를 괴고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남편은 침대에 누워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있었다. 나는 화가 나서 물었다. "애가 왜 저렇게 돼 있어?" "아니, 계속 우는데 어떡해? 속싸개로 단단히 싸매야 안정감을 느낀다며." 너무도 태연한 남편의 태도에 기가 막혔다. "아니, 아직 뒤집기도 못하는데 저렇게 두면 뒤척이다 이불이 코만 덮어도 신생아들은 질식하는 몰라?" 나는 방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남편이 그 심각성을 깨닫길 바랐다. 초보 아빠라 몰랐다고 핑계라도 알았던 남편은 아이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에 놀라지도 않고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알아서 절대 풀리게 묶어놨어."

"......"


분명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올라간 입꼬리에서 소름 끼치는 서늘함이 느껴졌다. 표면온도 -214 태양계에서 가장 차가운 행성 해왕성에 발을 디디면 이런 느낌일까. '어떻게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 새끼가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해놓고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나는 몸서리쳤다.


그 작은 아이가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며 도리어 텔레비전 볼륨을 올린 사람이 내 아이의 친부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의 고통과 위험신호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방금 자식을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어린 아이를 두고 엄마라는 사람이 미용실을 다녀오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으니, 내가 바로 이 학대의 공범이었다.


나는 그 시간부로 남편에게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했다. 그 대신 절대 아이와 단둘만 두고 나가지 않는 편을 택했다. 열 달을 배 아파 낳은 이 소중한 아이를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잠깐 쉬겠다고 외출을 했던 그 두어 시간 사이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목격해 버렸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의 은하에서 가장 빛나는 예쁜 별이 이대로 떨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