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니버서리 Mar 18. 2024

내가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는 이유

노 땡큐!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도 생각이 다 같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랑이 다음 사랑으로 잊힌다는 노랫말처럼 새로운 사람과의 재혼을 통해 첫 번째 결혼의 상처를 치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첫 번째 결혼으로 체험해 버린 결혼 이후의 세계에 다시는 발 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다.


어떤 이들은 내게 그건 그저 '그 사람'의 문제였을 뿐이라고 마음을 너무 닫지 말라 조언한다. 40대에 혼자되 자녀 둘을 홀로 키워낸 50대 여성 지인이 내게 말했다. '애들 금방 커. 계속 혼자 살기엔 아직 젊잖아?' 전 부서장이셨던 60대 남성은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이, 이렇게 참한데...... 너무 아까워!' 나도 안다. 이들이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씀인 것을.


하지만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너무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참을 수 있는 극한까지 참아봐서 그런지 모르겠다. 사람이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 있지만, 교훈을 얻은 뒤에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라는 사람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하면서도 '혼자 살기에 젊어서 아깝다'는 건 '누군가를 위해 쓰이지 못해' 아깝다는 말 같아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런 조언을 들을 때면 '에이, 아녜요. 아이랑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하며 능구렁이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아마 그분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배우자가 꼭 필요하고, 부재 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삶이었겠지 싶다. 이제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예전에 여자가 혼자 아이를 기를 때보다는 많은 것이 나아졌다.








1년의 별거 및 이혼소송 기간을 포함해 총 3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이 땅에서 싱글맘으로 살아왔다. 내가 내린 결론은 '쉽지는 않으나 못 할 것도 없다!'는 거다. 3년 동안 집에 남편이 없어서 아쉬웠던 순간은 솔직히 무겁거나 부피가 큰 물건을 나를 때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1년에 1~2번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그냥 유모차에 싣고 가면 해결이다.


보통 여자 혼자 살면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벽에 전동 드라이버로 커튼 설치하기 같은 거다. 살면서 공구를 다루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검색해 봐도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들이 정말 자세히 알려준다. 여자 혼자 거뜬히 할 수 있다. 재료들의 무게와 크기도 1인 가구가 보편화되면서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제품이 많이 나와 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안방과 작은방 커튼도 내가 직접 달았다. 막상 해보니 별 것 아니었다.


나는 최근에 자동차 와이퍼와 에어컨 필터도 혼자 쇼츠 보고 갈았다. 여자 맥가이버가 된 듯 정말 뿌듯했다. 남편이 있었다면 일단 부탁할 생각부터 했을 거고, 그러면 내가 배울 기회를 잃었을 거다. 해주면서도 생색내는 걸 다 들어주고 칭찬까지 해줘야 했을 테니 감정노동도 상당했겠지. 그런데 안 해봐서 막연히 어렵게 여겼던 문제들을 내 손으로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굉장한 자기 효능감을 느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삶에서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생긴다는 의미다. 그 확장된 자유만큼 나는 더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다.


여자 혼자 살면 곤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있다. 배달이나 가스 검침 등 모르는 남자를 집 안에 들여야 하는 상황에 대한 염려다. 나도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었다. 그래서 현관에 괜히 남자 사이즈 신발을 꺼내두고 칫솔도 남자 것 같아 보이는 걸 달아두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 역병 덕분에(?) 비대면 배달이 보편화되어 선결제 후 배달원이 문 앞에 두고 가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에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면 된다. 가스 검침도 셀프로 계량기 눈금 사진을 찍도록 비대면 서비스로 전환되어서 검침원의 얼굴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반대로 다시 결혼을 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는 상당하다.


'아내'라는 역할이 추가되면 남편의 식사와 의복, 건강 등 챙겨줘야 할 일이 늘어난다. 내가 동의함에 체크한 적 없어도 '며느리' 역할은 자동으로 따라서 추가되는데, 이건 더 최악이다. 생전 처음 보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부, 명절선물, 용돈 등을 내 일처럼, 아니 내 일보다 우선해서 챙겨야 한다. 내 부모님도 잘 못 챙기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시댁이라는 곳에는 시부모만 있는 게 아니다. 시누이, 시동생, 시이모, 시외삼촌까지 줄줄이 소시지처럼 끝도 없이 달려 나온다. 내가 '어른'으로 떠받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이다. 단지 '며느리'라는 이름이 새로 생겼을 뿐인데, 당연하게 내 몫으로 떨어지는 과제는 너무나 많고 나의 경계는 미처 '들어오지 마시오' 표시를 할 새도 없이 침범당한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시월드'라는 이름의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계였다.


나는 다시는 '아내'와 '며느리'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재혼은 다. 지금 이대로 아이와 잘 살아갈 거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또 나 자신도 함께 키워가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헤쳐나가면 되지. 그걸 남자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내 삶은 다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채 주체성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 새로 만날 지도 모르는 그분(?)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주어진 '역할'에 파묻혀 정작 스스로의 존재는 잃어버렸던 뼈아픈 실책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삶은 '나'로서 그리고 '내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고 싶다. 남편의'아내'와 시부모의 '며느리' 역할을 하느라 등한시했던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고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애정과 관심을 듬뿍 주면서. 안 그래도 태부족인 나의 체력과 에너지를 소중한 우리 두 사람에게만 쓰련다. 그게 가장 가성비 좋은 선택이다.









 

이전 06화 나는 학대의 공범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