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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줌 Mar 22. 2024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네 글자, 조.직.검.사.

※ 그 '조직', 그 '검사' 아님 주의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뼈 바로 아래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쓰러진 사람의 맥박을 확인할 때 구조대원이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대는 바로 그곳! 왼쪽 하악 아래 그곳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면서 목을 만져보면 양쪽이 다른 느낌이 있었다. 신경이 전혀 안 쓰인 건 아니었지만 통증도 없었고 아이가 어릴 때라 온 신경이 육아에 가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곤해서 임파선(?) 같은 게 좀 부었나 보다 했다.


회사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왼쪽 목을 자꾸 만지는 것이 보였는지 주변 동료들이 병원에 가보길 권했다. 만져지는 알맹이가 점점 더 커졌다. 눌러보면 꽤 단단했다. 퇴근 후 초음파 검사가 가능한 동네의원 들렀다. 그간의 이력을 의사에게 말했다.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고, 대략 6개월은 넘은 것 같은데 자꾸 커진다. 아프지는 않은데 딱 보이니 거슬린다. 약국에서 녹이는 약을 줘서 먹어봤는데 아무 효과도 없었다......'


의사는 귀로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손으로는 쉴 새 없이 혹을 눌러보고 쥐어보며 촉진을 했다. 그러더니 한차례 코로 숨을 내쉬며 건조하게 말했다.


"흠, 일단 이건 그냥 피하종이나 물혹은 아니고요, 일종의 종양입니다."


종......

양......?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종양이라니 이름부터 너무 무서웠다. 의사는 무심하게 하던 말을 이어갔다. "종양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양성이랑 악성이에요. 악성이라는 게 우리가 히 말하는 '암'이죠. 그건 조직검사를 해봐야 니다. 위치나 모양으로 봤을 때 양성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도 조직검사는 꼭 받으셔야 되고, 어느 쪽이든 제거수술도 하셔야 니다. 크기가 이미 많이 커진 상태라 절개밖에 방법이 없어요."


조직검사라니,

제거수술이라니......!


무서운 단어들이 의사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다. 곧바로 초음파 검사가 시작되었다. 의사는 내 목에 차가운 겔을 바르더니 초음파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며 문제의 혹을 요리조리 촬영했다. 그리고 그 영상을 CD로 구워 흰 봉투와 함께 내주었다.


혹은 겉에서 만져지는 것보다 더 컸다. 빙하로 치면 밖으로 솟아난 산보다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 더 큰 덩어리가 잠겨 있는 것과 같았다. 지름이 7cm가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절개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단다. 거울을 보면 정면에서 딱 보이는 목에 어른 손가락 길이 만한 수술자국이 생긴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선고였다.


"저, 근데...... 이 왜 생긴 거예요? 제 생활습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요?"


"아뇨. 이런 걸 '상세 불명의 신생물'이라고 니다. 불. 명. 원인을 정확히 모른다거죠. 여러 가지가 복합돼서 나타날 수 있는데...... 흠, 최근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어요?"


"......"








목을 절개해야 해서 이런 동네병원에서는 못 하는 수술이니 꼭 대학병원에 가라고 했다. 의뢰서를 써주었으니 초음파 자료와 함께 들고 가서 빨리 조직검사 날부터 잡으다. 나는 뭔가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진 상황이 아직 적응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영혼 없이 '네. 네.' 하다 의원을 나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암일 수도 있다는 말에는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뭐, 별 것 아닐 거야.' 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반응은 '그게 암이면 벌써 여기저기 아프지 그렇게 멀쩡할 리가 없다. 수술 안 해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어.'였다. 걱정 말라는 취지였겠지만 귀찮은 일 벌이지 말고 대충 넘어가라는 말로 들렸다. 가슴 한가운데 조용히 서리가 내렸다.


마지막으로 친정 엄마한테 전화했다. 내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당장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빨리 얘기를 하지 그걸 6개월이 넘도록 참았냐고 속상해하셨다. "다른 사람 눈에 보일 정도면 엄청 커진 건데...... 큰 일이네, 큰 일이야. 얼른 가, 얼른!" 엄마가 둔탱이 딸내미 때문에 속이 터진다고 열을 올려준 덕분에 내 가슴에 내리던 서리가 다시 녹았다.








그렇게 나는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 예약을 하고 얼마 뒤 말로만 듣던 '조직검사'를 받았다. ◇◇대학병원은 내가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119에 실려와 무려 12주 동안 입원했던 마음의 고향(?) 같은 병원이다. 놀랍게도 그로부터 약 2년 후, 나는 대학 신입생이 된다. 그런 기가 막힌 인연으로 내가 심리적으로 편안히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교우 할인도 놓칠 수 없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간이침대에 누웠다. 검사를 맡은 전공의는 나더러 최대한 몸을 침대 위쪽으로 끌어올린 다음 'ㄱ'자를 뒤집어 꺾듯 머리가 바닥을 향하게 목을 뒤로 늘리는 고난도 자세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까마득한 후배였지만 이 순간 나는 환자일 뿐이었다. 고분고분 협조하며 내가 가진 목의 최대치를 뽑아내려고 짧은 목을 있는 힘껏 뒤로 젖혔다.


문득 어릴 적 강태공을 꿈꾸던 아빠를 따라 주말마다 낚시터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체 구조상 인간은 목과 턱이 수직으로 맞대고 있는데 반해 물고기는 수평으로 쭉 이어져 있다. 그래서 알파벳 V자 모양의 아래턱뼈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다.


한참을 앉아서 세월만 낚던 아빠가 어쩌다 다섯 짜리 떡붕어라도 잡아 올릴 때면, 어린 내 눈에는 놀란 듯 크게 벌어져 있던 어의 주둥이와 함께 커다랗게 위용을 자랑하던 하악이 그렇게 늠름해 보였다. 견고하게 잘 만든 한옥 지붕 아래 있는 서까래 같달까.


국소마취를 했지만 굵은 바늘(?)이 내 혹의 한쪽을 뚫고 들어가 반대쪽 끝에까지 쑤욱 들어가는 느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무자비한 전공의는 그 기다란 쇠꼬챙이를 혹의 심장부에 찔러 넣은 채 몇 차례 강하게 흔들어댔다. 조직을 떼어내기 위한 작업 같았는데, 나는 흡사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기분을 알 것만 같았다. 움직일 수 없는 그 상태로 몇 분을 잡혀 있는 동안 낚시꾼에게 잡힌 떡붕어처럼 세상 우울했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조직을 몇 개 더 떼어내고 나서야 쇠꼬챙이의 저주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목이 뻐근했다. 전공의도 의원에서 만난 의사와 같은 말을 했다. "양성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검사결과가 양성이어도 계속 커지거나 그냥 두면 악성으로 흑화(?)하는 경우도 있어서 속히 제거하셔야 합니다."


때까지만 해도 나는 조직검사만  암이 아수술은 솔직히 미룰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미룰 생각이었다. 암만 아니라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불순한 환자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의사의 눈빛은 단호했다. 빠르게 진행해도 대학병원의 스케줄 상 수술일까지는 수주가 걸리니 바로 날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전문적인 겁박과 엄마의 펄쩍 뜀 덕분에 나는 결국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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