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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버서리 Mar 14. 2024

'이것' 있어야 결혼하고, '저것' 없어야 재혼한다

정답은 무엇일까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간 날이었다. 고등어구이와 갈치조림이 일품이었다.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하고 돌솥에 미리 따뜻한 찻물을 부어 불려둔 숭늉을 뜨기 시작했을 때였다.


"자기들 그거 봤어? 내가 어제 <커플 팰리스>라는 예능을 봤는데......"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아, 그거 저도 봤어요." 맞은편에 앉은 여자 직원이 호응해 주자 아주머니는 아예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다.


"남자 오십, 여자 오십 명이서 서로 결혼할 사람을 찾는 건데, 한 명씩 나오는 거 보고 마음에 들면 선택하는 거야. 다들 의사에 변호사에 억대 연봉은 기본이고 인물들도 어찌나 좋은지, 우리 같은 서민들은 딴 나라 얘기 같라고."


아주머니의 이야기대로라면 그건 일종의 '경매'였다. 판매될 오늘의 경매품이 무대에 등장하고 줄지어 앉아 있는 입찰 희망자들이 팻말을 들어 구매의사를 표시한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자가 경매품을 차지한다. 나는 아주머니 쪽에 시선을 주지 않고 돌솥을 응시하며 무심하게 숭늉을 한 숟갈 떠먹었다.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다분히 자극적인 기획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기 웬 눈 똥그란 여자애오는데, 결혼하고 강남에 신혼집 없으면 자기는 못 산다고 만나자마자 딱 얘기를 하는 거야! 나 참,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가 하고 내가 너무 놀랐잖아." 내 앞에 앉은 젊은 여자 직원이 "남자가 집 해오면, 자기는 뭐 하고요?"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재미있는 게, 이혼한 사람들도 있어. 거 뭐라 하지? 그 돌.. 돌싱! 여자 둘, 남자 하나. 근데 보니까 남자들이 이혼은 별로 신경 안 쓰더라고! 얼굴 예쁘고 날씬하니까 그냥 선택하더라니까? 오히려 카이스트 박산데 인물이 좀 빠지는 여자랑 미스코리아 출신인데 살이 좀 찐 여자랑 그 둘이가 한 표도 못 받아서 집에 갔잖아. 아니 그 카이스트 박사가 마지막에 '제가 준비가 부족했나 봐요......' 그래. 아니 거기서 뭘 더 준비하냐고, 안 그래?"


아주머니의 열변에 여자 직원 의기투합했다. "아유, 결국 남자들은 얼굴 예쁘고 몸매 날씬한 여자가 최고라는 거네요. 스이 너무 뛰어나도 안 되고!" 세 여자는 생선구이집에서 조만간 남자들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성토대회라도 열 기세였다. 내 옆에 앉은 결혼한 남자 직원은 멋쩍게 웃으며 돌솥에 거의 코를 박은 채로 숭늉만 연신 떠먹었다.


"근데 생각 외로 이혼한 거는 별로 상관없어하더라고.. 남자는 초혼인데 이혼녀를 선택하더라니까? 나는 우리 아들이 그런 여자 데려올까 봐 겁나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두 여자 직원의 반응은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았다.


"에이, 요즘 이혼은 흠도 녜요. 애만 없으면." 

"맞아요, 애만 없으면 크게 상관없어요!"  








바로 그 '애 딸린 이혼녀'가 바로 앞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뭐,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들의 말 뜻은 요즘 사람들이 이혼을 예전보다 크게 생각 안 한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니까. 그들의 무신경함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 귀에는 '애만 없으면'이라는 다섯 글자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혼은 이제 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단서조항에 '애만 없으면'을 붙이는 심리는 무엇일.


결혼 생활을 했으니 아이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혼 후에도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양육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왜 아직도 이 정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이혼 후 친권과 양육권을 가진 사람은 엄마든 아빠든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쪽이다. 아이를 책임질 능력과 의지가 큰 부나 모가 양육을 맡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런 양육자들이 '애 딸린'으로 시작하는 모욕적인 꼬리표를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혼은 흠도 아니다'라는 말 자체에도 사실은 '재혼시장에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재혼시장으로 들어갈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들까지 그 시장 참여자의 시선으로 함부로 재단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깨졌어도 부모로서 아이를 지키겠다고 나선 용기 있는 싱글 페어런트(single parent) 하자 있는 사람 취급하면 곤란하다. '애 딸린 이혼녀'라니 지금 60대 중반인 우리 부모 세대, 어쩌면 그보다도 앞선 세대의 말을 아직도 무분별하게 쓰고 있 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만큼은 중한 녀를 책임지고 있는 양육자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혼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업신여김을 받을 만큼 잘못도 아니. '애 딸린 이혼녀'라는 말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차별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중립적인 단어로 교체할 때가 됐다. 뉴트럴 하게 '싱글 페어런트'라고 하거나 '양육자'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애 딸린 이혼녀, 이혼남' 아니라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 싱글대디'일뿐이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문제의 정답은 '집' '애'다. (강남에) 집 있어야 결혼하고, 애 없어야 재혼한다.








대한민국은 몇 년째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 미만인 초저출산 국가다. 2023년 4분기 출산율은 0.7 이하로 떨어져 역대 최저 출산율 기록을 세웠고,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지 않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무섭게 줄어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편함만 추구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젊은이들에게도 나름의 확실한 이유가 있다. 은 맥락에서 정부가 어떤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정책을 내놓아도 청년들이 갑자기 인생계획을 전면수정해 토끼 같은 자식너덧 명씩 낳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다.


우리 정부와 사회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아이들'이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보았으면 한다. 혼전 임신으로 생긴 아이를 낙태시키지 않고 홀로 낳아 키우는 혼모와 미혼부, 그리고 이혼이나 사별로 배우자 없이 자녀를 홀로 양육하고 있는 한부모 가정이들을 보아달라.






인구절벽이 국가적 문제라고 연일 호들갑을 떨면서,

막상 아이들을 지켜낸 싱글 페어런트들은

'애 딸린 이혼녀, 이혼남' 소리를 듣도록 방치하는 세상 


이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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