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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줌 Mar 12. 2024

이혼했는데 '돌싱'은 아닙니다

돌아오긴 어딜 돌아와






요즘 이혼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돌싱'이라는 말이 있다. '돌아온 싱글'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 비슷한 말로 '한 번 갔다 왔어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엔 별 의식 없이 그 말을 사용했다. '이혼했어요.'라고 하는 것보다 '돌싱이에요.' 라거나 '갔다 왔어요.'가 어감상 덜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문득 '나는 돌아온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돌아왔다면 '어디로 돌아온 거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개인 프로필 상 '결혼 상태' 항목이 '커플'이 되었다가 '싱글'로 바뀌었다는 뜻에서 생긴 말일까. 여자로 치면 '시집'에 갔다가 '친정'으로 돌아왔다는 소속변경의 의미도 있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냐면 나는 돌아온 게 아니었으니까.








돌아오긴 어딜 돌아와!


생각해 보자.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소위 결혼적령기-싱글 남녀가 만나 결혼을 했다. 그들의 결혼상태는 '미혼'에서 '결혼'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헤어지면 '결혼'에서 '이혼'으로 바뀐다. 이혼 후 그들의 상태는 결혼 전 미혼일 때와 같을까?


답은 '아니요'다. 결코 같을 수 없다. 아니, 과장 조금 보태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아이까지 낳았다면 그 차이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벌어진다. 그러니 그들은 '돌아온' 것이 아니다. 결혼'도' 하고 이혼'도' 겪어낸 것이지. 


결혼과 이혼은 바닥에 선을 그어놓고 한 번 넘어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땅따먹기가 아니다. 그 옛날 비디오테이프처럼 휘리리릭 효과음과 함께 앞으로 되감기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돌싱'이란 말은 틀렸다. 방송국 놈들이 낚시용으로 급조한 신조어 내지 다시 왕년의 싱글로 돌아왔다고 믿고 싶은 자들이 만들어낸 궁색한 변명이다. 어느 쪽이든 별로다.








A Whole New World


이혼 후 나는 본가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혼자 일하고 아이를 키우며 독립된 2인 가구의 가장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소속변경의 의미로도 나는 어디로도 돌아가본 적이 없다. 꽉 찬 4년 간 결혼 후의 세계를 경험했고, 현재는 이혼 후의 세계에 도전하고 있다. 두 세계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이건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Aladdin)>의 주제가 제목처럼 'A whole new world'다. 철저히 낯설고 새로운 세계다.


처음 만나는 완전히 낯선 세상에서 나는 아이와 손 잡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언뜻 보면 내가 아이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아이가 나를 지탱해 주는 힘도 만만찮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안전벨트가 되어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있는 거다.


모든 것이 달라진 삶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회사에서 '한부모'라는 사유로 당직을 면제 받을 때, 유치원 입학 서류를 작성하며 보호자에 '아빠'의 이름과 연락처를 비워둘 때,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힌 어버이날 편지를 받았을 때 같은 순간이다. 그럴 때면 몆 초 간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해지고 낯선 공기가 털끝으로 감지된다.


이혼 후에 만난 세상은 <알라딘> 주제가의 노랫말처럼 반짝이고(shining) 빛나고(shimmering) 눈부신(splendid)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가슴 시리고 먹먹하고 눈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가장으로서 이혼한 뒤 내 모습은 지금까지의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 또렷(crystal clear)하다. 그렇게 아이와 날아오르고(soaring) 텀블링하고(tumbling) 자유롭게 살아갈(free wheeling) 거다.


영화 <알라딘>의 여주인공 재스민의 말처럼 '나는 내가 있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I can't go back to where I used to be)'. 이혼 후 만난 새로운 세계에서 나는 아이와 멋지게 새로운 지평선(new horizons to pursue)을 그려나갈 거다.






그래서 나는 이혼했지만 '돌싱'은 아니다.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고 맞이한 새로운 세계를 작은 두 발로 쾅쾅 구르며 힘차게 걸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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