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줌 Mar 11. 2024

결혼기념일 대신 이혼기념일이 생겼다

해피 언니버서리!






3월 15일은 내 이혼기념일이다.


22년에 법적으로 완전히 혼인상태에서 벗어났으니 이혼 2주년인 셈이다.


사람들은 이혼을 '결혼의 종말', '결혼의 실패'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이혼을 기념하고 싶다. 축하하고 싶다.







이 예문을 보라.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가?



We are celebrating Tom's unniversary.

It's been a year since he won freedom.


우리는 톰의 이혼기념일을 축하하고 있다.

그가 이혼하고 자유를 얻은 지 1년이 되었다.



머릿속에 문득 '이혼기념일'이란 단어가 떠올라 검색을 해보았다. 이런 개념을 생각한 선험자들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영어에는 아예 그런 단어가 있었다.


'언니버서리(Unniversary)'. 원래 기념일을 뜻하는 '애니버서리(Anniversary)'에서 앞 글자만 부정형인 'un'으로 바뀐 형태다.


나는 조금 다르게 읽어보았다.

'애니'가 '언니'가 된 거네, 이혼하고.


순간 나는 이미 이혼을 했거나 하는 중인 전 세계의 '애니'들과 순식간에 연결되었다. 다 같이 손에 손을 잡고 '언니버서리'라 불리는 새로운 유니버스를 향해 날아가는 어떤 자매애(sisterhood)랄까!








언니가 되다!


말장난 같지만 이혼은 정말 언니가 되는 경험이다. 삶의 다른 어떤 사건이 이 정도의 임팩트로 물벼락을 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겠는가. 이혼의 계기나 과정은 사람들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이것이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 위에 차가운 냉수 한 양동이를 사정없이 맞는 경험은 실로 충격적이다. 이날 우리는 한 번 파괴되고 다시 재생된다. 놀람과 분노로 몸을 떨며 울부짖는 시간이 지나가면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해진 정신으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게 된다. 습기와 열기로 뿌옇던 안경 렌즈에 김이 사그라들고 초점 또렷해진다.


'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달라진 눈빛으로 애니들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공부하고 연구한다.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또 찾는다.


결혼이 지옥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이혼할 결심은 일종의 자기구제다. 인간은 위기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움직인다. 불이난 건물에 갇혀 있던 사람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유리창을 깨고 필사의 탈출을 하듯, 위기대피능력은 우리 유전자에 태고로부터 각인되어 있는 본능이다.





그래서, 나는 이혼을 기념하기로 했다.

마음껏 축하하고 기뻐하기로 했다.





1주년은 챙기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2주년인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갈 거다. 가서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며 즐길 것이다. 이혼으로 얻은 자유를 실컷 만끽하고 스스로에게 온 체중을 실어 말해줄 거다.


"해피 언니버서리! 이혼 2주년 기념일 축하해.

그때 네가 용기 내 준 덕분에 지금 나는 자유야.

진짜 진짜 고마워. 진짜 진짜 잘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