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었다. 잊을 수는 있어도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며 알았다. 내가 이미 전남편을 많이 용서했다는 것을. 그렇게 크고 강하고 두려운 존재였던 그는 이제 더 이상 내 삶에 그 어떤중대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구나. 그의 통제와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났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증오하며 사는 것은 생지옥 체험을 이승에서 자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용서하기로 한 그 순간부터 용서가 시작되는 것 같다.
함께 있고 싶어 결혼했지만, 함께 있을수록 불행해서 이혼했다. 불행의 길 위에서 전력을 다해 발버둥 쳐서 겨우 진로를 바꾸었다. 관성대로 흘러가는 경로를 이탈하는 것은 모험이고 리스크가 크다. 그것을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했을 만큼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확실한 불행의 길이라고 내게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경로를 이탈해 새로 만난 오프로드는 거칠지만 내가 하기에 따라 스릴 있는 코스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왔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전방을 주시한 채로 달려가고 있다. 내 삶의 운전대를 내 손으로 꼭 잡은 채로 카시트에 아이를 태우고 초보지만 용감하게 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뿌리에 걸려 덜커덩할 때마다 깜짝 놀라면서도 두 번째에는 요령이 생기고 자신이 붙는다. 엉뚱한 길로 가서 진창에 바퀴가 빠져도 침착하게 일단 멈추고 뒤로 후진해서 빠져나가면 된다는 것을 안다. 시행착오를 겪을수록 삶을 즐길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이혼을 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어차피 롤러코스터 아니었을까.
전남편은 지금까지 딱 한 번 빼고는 양육비를 잘 보내고 있다. 아빠로서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시절에 남편이자 아빠 역할을 포기했던 대가로 과거의 아내와는 새로운 관계가 되었다. 혼인관계가 넘겨준 바통을 이어받아 채권자와 채무자로서 새로운 법적관계가 맺어졌다. 그리고 아이를 중심으로 한 부모로서의 책임에는 만료일이 없다.
그는 면접교섭을 사실상 포기했다. 아이가 아빠를 본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 사이에 아이가 두 번 아빠를 찾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바로 전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연말에는 미리 일정을 잡았는데 3일 전에 문자 한 통으로 취소당했다. 실망한 아이를 달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최근 아이가 올해 어린이날에 아빠랑 놀고 싶다고 해서 다시 문자를 보냈는데, 이틀 뒤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내가 정신적으로 좀 안 좋아서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지 몰라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 양육비는 잘 보낼게. 잘 지내'
전남편의 현재 상태는 알 수 없다. 과거의 데이터로 미루어보아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어떤 이유가 됐든 면접교섭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사실 접견은 자녀의 권한이기도 하다. 아이가 원할 때만큼은 아빠를 만나면 좋겠다. 하지만 저렇게 선언한 사람에게 가타부타 말을 더하기도 어렵다.
나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맺었어도 아이와의 관계는 늦지 않았는데 안타까우면서도 그도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 하고 만다. 아이는 아주 어릴 때라 아빠의 폭언과 살벌했던 분위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가 보내주는 양육비는 그의 반성문일까. 기든 아니든 상관없다. 나는 나와 아이를 위해, 지독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전남편을 용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기억 속에서 그를 완전히 '과거'로 보낸다. 내 삶을 쥐고 흔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비로소 해방이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 없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 줄 수는 있어도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는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