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니버서리 Apr 29. 2024

'이혼 초년생'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지금은 일단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간






갓 이혼 신고를 마친 따끈따끈한(?) 이혼 초년생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협의이혼을 했든 소송이혼을 했든 아니면 나처럼 조정이혼을 했든, 아이가 있는 양육자라면 단언컨대 양육부담을 나눌 수 있는 '일손'이 가장 필요하다. 이미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혼 초년생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은 아이를 잠시라도 돌보아줄 수 있는 '보조양육자'의 존재이다. 다다익선. 보조양육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혼 후 아이와 나 이렇게 단출한 2인 가구가 되었다. 그 순간 '가용자원 총동원령'이 자동 발령된다. 삐용삐용삐용~ 모두 다 헤쳐 모여!


말할 것도 없이 '부모님'이 가장 크고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연세가 드신 부모님을 황혼육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일은 굉장한 죄책감을 동반한다. 하지만 우선 당장은, 내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손을 벌려야 한다. 죄송스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자. 나처럼 직장 관계로 부모님과 다른 지역에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라면, 주말에 몇 시간 만이라도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이를 사랑하고 잘 케어하는 것과 별개로, 엄마도 엄마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주에 단 1시간이라도 '나'만을 위한 리프레시 타임을 꼭 갖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연로하신 부모님의 주말을 몽땅 빼앗을 수는 없다. 과하면 부모님도 지치고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때 우리를 구해주는 게 바로 '형제자매'와 '친구들'이다. 특히, 결혼 안 한 형제자매와 친구가 있다면 금상첨화. 부모님이 오실 수 없는 때나 아이에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시간이다. 나처럼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경우라면, 아빠의 부재로 '성인 남성'과의 놀이 시간이 부족해진다. 다행히 내게는 듬직한 남동생이 있었다. 지성이(가명)는 아이의 생일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아빠의 부재를 실감할 수 있는 특별한 날마다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었다.


내 친구인 이모들도 아이를 보러 먼 길을 달려와 주었는데, 그런 시간들을 통해 아이는 비록 가족이 두 명으로 줄었지만 우리 둘 주변에 우리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체감하게 된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에게 아이가 가족소개를 거창하게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엄마랑 사는데, 사실 우리 가족은 스물두 명이야!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제주도 이모, 니 형아, 진 누나, 미경이 이모, 또 무슨무슨 이모삼촌 등등등......" 그러자 그 친구가 '우와~' 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셈을 하면 스물두 명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어쨌든 아이도 제 나름대로 아빠의 빈자리를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로 채워가고 있는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무리 아이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엄마라도 365일 24시간 100% 혼자 하는 솔로 육아(solo parenting)는 무리가 된다. 체력도 달리고 몸이 지치면 마음까지 약해지고 만다. 원더우먼처럼 다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럴 때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양육하고 있는 그 자체로 당신은 이미 '좋은 엄마'라는 것을.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어깨를 짓누를 때 생각해 보자. 엄마의 이데아 같은 것은 없다. 허상이라고 해도 좋다. 모든 엄마가 귀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자체로 엄마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환경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 적응기를 거치면 차차 혼자 하는 솔로 육아익숙해진다. 요령도 생겨서 포기할 건 포기할 줄도 알게 된다. 애초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건 양부모라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싱글맘들이 혼자서 엄마역할과 아빠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스스로를 숨 막히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하면서 아이까지 돌보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상에 1인분도 못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대들은 혼자서 2인분을 해내고 있다. 이건 보통 역량이 아닌 거다.


아이가 잠들고 육퇴시간이 오면 꼭 잠들기 전에 자신을 두 팔로 감싸 안고 말해주자.

"OO아, 오늘도 잘 해냈다. 너무너무 수고했어. 대견하다, 나 자신!" 


심리상담가에게 들은 말인데, 두 팔을 가슴 앞에서 엑스(X) 자로 교차해서 반대편 어깨를 잡고 두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힘내" 하고 소리 내어 말하면 실제로 기운이 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우리가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의 따뜻하고 규칙적인 토닥임과 손의 온기가 마음까지 전해진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나 자신에게 셀프 토닥토닥 케어를 해주자.


 마음이 힘든 날에는 오른손을 앙가슴에 대고 살짝 누르듯이 토닥토닥해 주며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별 일 아니야. 걱정 마." 하고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해주면 된다. 진심이 듬뿍 담긴 나의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 앉아 있든 누워 있든 그 자리에서 바로 한 번 실천해 보자.


옆에 잠든 아이 말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토닥토닥 서비스는 꼭 필요하니까.



 





 

이전 18화 나는 결국 한부모가족이 되지 못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