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까맣고 동그란 눈이 맑다. 나의 다리 밑에 얌전하게 자리를 잡고 엎드린다. 내가 엄마인줄 안다. 신기하게도 내 새끼 같이 군다. 태어나 또래를 본적 없고 집에서 사람만 보고 자랐다. 그래서 저가 사람이라 여기는 듯하다. 짖지도 않는다. 처음엔 벙어리인가 생각했다. 첫 생일이 지난 어느 날 고양이가 우리 집 담을 넘어 들어와 영역을 침범했을 때 처음으로 짖었다. 마음이 놓였다. 벙어리는 아니어서.
말랑한 살결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언제나 나를 졸랑졸랑 따라 다닌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발밑에 엎드린다. 내가 침대에서 잠이 들면 침대 밑에서 저도 잔다. 심지어 침대 위를 올라와 이불 속을 파고든다. 내 등에 살포시 기댄다.
나의 기타 연주를 좋아한다. 조용한 음악을 연주를 하고 있으면 발밑에 엎드려 눈을 껌벅껌벅 하다 스르륵 눈꺼풀이 내려간다. 내 발등에 턱을 괴고 잠이 든다.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출 때는 흔들리는 발을 잡겠다고 박자에 맞춰 뜀박질을 한다.
종일 있어도 짖는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대화한다. 눈을 마주치며 손짓과 발짓으로 온종일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기와 종일 얘기하듯이. 머릿속에 온갖 언어들로 가득히 남아 가슴 가득 언어가 넘친다. 농장에서 태어나 우리 집으로 이사 온 퐁이다.
내가 나가는 기색을 보이면 슬픈 듯 지그시 나를 바라보다 눈동자에 눈물이 고인다. 코를 실룩실룩 거리며 눈물을 참는 듯하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돌아앉는다. 삐친 것 같다. 애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내가 있다. 현관 앞에 서서 나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퐁아’ 라고 부르면 얼른 달려온다. 울지 마, 빨리 갔다 올게, 라고 달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퐁이의 동공에 비친 내가 또 다른 누군가의 눈망울 속에서도 담겼던 때가 있었을까. 내 스무 살 언저리에는, 실없는 사람처럼 일을 하다 웃고 문득 문득 하던 일을 던지고 달려가고 싶었던 간절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 볼 수도, 바라보지도 못했던 그때가 떠오르는 건 퐁이의 눈동자가 너무나 투명하기 때문일까.
내가 나갔다 돌아오면 언제 슬퍼했냐는 듯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닌다. 한참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돈다. 숨을 헐떡이다가 입에 장난감을 물고 다시 뛴다. 애교를 부리는 중이다. 한참을 뛰다 벌러덩 뒤집어 진다. 배를 내게 내밀며 최고의 애교를 부리는 중이다. 배를 만져주면 편안한 듯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퐁이의 호들갑스런 마중은 피곤했던 하루 일을 잊게 한다.
분양된 지 육 개월 쯤 되었을 때인가. 화분에 있는 식물을 뿌리까지 통째로 삼켜버렸다. 모두 토하고 삼 일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눈만 휑했다. 처음 키워보는 반려견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 죽을 것 같았다. 동물 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히고 약을 먹였다. 그래도 힘이 없었다.
일을 하다가도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멍하니 일을 멈췄다. 알지 못할 슬픔이 몰려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픈 퐁이를 생각하자 눈물이 뚝 떨어졌다. 눈물을 떨어뜨린 나자신에게 놀랐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청춘의 가슴 뛰는 애틋함을 가슴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고 사는 것일까. 한낱 개 한 마리를 두고 눈물을 흘린다. 청춘에 알지 못했던 사랑이 그립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