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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없는여자 Mar 22. 2024

아이를 갖고 싶지만 동시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네가 남자였으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을 거야.”  아버지는 가끔

부모가 서로를 욕하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네가 남자여야 했었는데 소리를 듣고 자랐을 수 있어요


우연히 김창옥 선생님 영상을 보았다

이 문장을 듣고

나는 하던 것을 멈추었다


나는 나의대에서 고리를 자르겠어

나는 아이 낳는 게 두려워

내가 본 대로 나의 아이에게 할까 봐



“네가 남자였으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을 거야.”


아버지는 가끔 이 말을 꺼내놓았다

어머니는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나에게 쏟아내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화를 나에게 쏟아내었다


부모님은 본인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부자가 되셨다 자식들에게 자신이 받지 못한 부유함을 한껏 나눠주셨다 물질적인 풍요를 주는 게 사랑을 하는 거라고 여기셨다 자신은 충분히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자신의 방식으로 넘치게 주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풍족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했던 따뜻한 눈빛과 포옹 그리고 조건 없는 받음은 경험하지 못했다


“엄마 왜 그랬어? 나는 동생들도 잘 돌보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집안일도 참 많이 했는데 어릴 적에 왜 그렇게 혼낸 거야?”


“그때 내가 참 힘들었어.”


나는 부모님이 힘들어서 참 많이 혼났다

나는 내가 부족하고 못돼서

부모님이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으로는 안돼라는 말을 거의 안 하셨지만 정서적으로 나는 거의 거절을 받았다

나의 성별부터 거절을 경험했다


나는 어릴 적 내가 여자인 게 싫었다

팔 남매 장남의 딸인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제사 때 나에게 절을 올리라고 하셨다 여자도 제사 때 절을 할 수 있는 거라 말씀하셨다 어릴 땐 그래 나도 여자지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거야 아무렇지 않았다 다시 돌아보면 나는 여자임에도 제사에 참여한 게 아니라 여자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왔음을 알았다


나의 존재로 인정받지 못 했던 거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눈치를 많이 봤다

엄마에게 지기 싫어하는 아이이면서 동시에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다

동생들은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참 싹싹 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아주 어릴 적부터 애를 쓰고 살았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동시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매달 임신 시도를 했다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되지 않는 시도를 계속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것만 같아 걱정이 되었다

나의 생각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때는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의식 없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행동만을 했다.

생각은 바꾸지 않고 행동은 계속한 이유는 뭘까?

두려웠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손가락질 받는 게 싫었다

시부모, 시댁 사람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 한마디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저 여자애 못 낳는데.. 저 여자에게 문제가 있데.. 내 앞에서 내게 말로 한건 아니지만 내 뒤에서 쑤군 되는 것만 같았다. 남들과 같아지려고 나의 상태는 전혀 돌보지 않았다 내가 남들과 다른 상태로 살아가는 게 창피했고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정말 창피했다


어찌 보면 나 임신이 되지 않았던 게 자연스러운 거였겠다 싶다

그땐 그걸 받아들이는 게 싫었다


이게 내가 삶을 살아온 나의 태도였겠다 싶다

나의 모습을 부정하고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쓰고 살았지만 결코 남들과 같아질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이 임신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나타난 건 아닐까

나는 무엇을 위해 임신을 하려고 했던 걸까?

최소한의 생명력으로 내가 한 것은 나를 부정하고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쓴 것뿐이라고 쓰기 싫지만 내가 살아온 모습이 그것밖에 없다는 게 서글프다 애쓰고 산 결과가 결국은 아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만약에

부모가 내가 여자인 걸 인정해 줬다면 내 삶은 지금과 다를까?

내가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고 내 스스로 말해줬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임신하지 않아도 나는 빛나는 존재라고 말해주는 한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면 나는 좀 더 일찍 나와 만났을까?


아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경험임은 맞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경험을 해 왔을 뿐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선택하는 이에게 당신이 원하는 경험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고통스럽게 애쓰는 삶을 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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