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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문지기 Nov 06. 2022

우리 집은 아버지가 만들고 내가 부순다

집은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네

아버지는 수북이 쌓인 모래를 삽으로 퍼 모래채에 던졌다. 먼지는 사방으로 흩날리고
나는 콜록이며 옆에 앉아 채를 통과한 모래가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생각했다.

우리 집을 짓는 중이었다.

희미하게 그어진 집터와 비포장 도로 밖에 없는 곳에서 모래를 갈고 벽돌을 쌓았다. 계획 단지로 조성된 동네 곳곳도 공사 중이었다. 집이 생기는 건 좋았지만 지역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시내에 갈 수 있고 가장 높은 건물은 5층 아파트가 전부였다. 촌놈이 된 기분이었다. 왜, 시내에는 집을 못 짓는 걸까? 촌티 나는 애들과 학교를 다녀야 하나? 등을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이사하던 날 어깨에 힘 들어간 부모님과는 다르게, 친구에게 주말마다 오겠다 말한 후 무덤덤하게 떠났다.

사실 좀 더 행복했어야 했다. 우리 가족은 대략 6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는데, 사글세를 계약기간만큼 일시불로 지불한 후 주인이 월세를 인상하면 떠나는 식이었다. 기억나지 않지만 집주인이 내가 달리는 게 싫어 혼내면 마당에서 운동화를 벗고 손에 쥔 채로 방에 들어왔다고 한다. 모두 집이 없어서 발생한 일. 이런 고난도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처음 집에 도착한 날은 하루 종일 조명을 켜놨다. 어른들은 1층에서 밤늦도록 고스톱을 쳤고, 나는 2층에 올라가 정원을 내려다보며 노랗게 퍼지는 빛이 분위기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이 생겨서 많은 것이 변했다. 내 방이 주어졌고 벽에 농구 골대를 달아 마음껏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짧지만 대 가족을 이루기도 했다. 혼자 계시던 할머니를 모셔왔고, 사업 실패 후 지쳐 있던 삼촌과 함께 살기도 했다. 시골 근처인 것은 여전히 싫었지만 가족을 모두 담아주는 집이 고마웠다.

집은 연결과 헤어짐의 공간이었다. 가장 먼저 삼촌이 나갔고, 할머니, 누나도 순차적으로 집을 떠나갔다. 북적거리던 밥상은 조용해지고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는 일도 없어졌다. 내가 짐을 싸면서 집안 공기는 더 차가워졌다. 남은 사람은 힘을 잃었고 집은 변하기 시작했다. 현관 계단을 없애고 전동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설치했다.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과 공기청정기가 들어왔고 또 사람이 줄었다. 가끔 본가에 내려가면 처음부터 이 모습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다른 곳은 모두 최신 원룸이 되었다. 오래된 집은 찾는 사람이 없어서 담벼락에 "방있음"이라고 붙여놔도 전화는 오지 않는다. 세입자가 살던 2층에 올라가 봤다. 처음 지었던 상태 그대로인 창틀과 조명이 보였다. 엄지 손가락보다 얇은 새시는 찬 바람을 막지 못했고 방은 어두웠다. 이사 첫날과는 다르게 볼품없었다. 이곳에서 가끔 과자를 주던 대학생 누나가, 매일 고기를 빻아 먹던 태국인 부부가 살았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닥에 쌓여 있는 듯했다.

집은 이제 마지막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 일이 끝나면 팔리고 사라질 것이다.
짐이 모두 빠지면, 나는 첫 번째 해체를 진행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나를 사랑해줬던 것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 한다.

나는 망치를 들고 대문 옆 벽돌을 힘껏 내리칠 것이다. 파편은 사방으로 날리고
그는 표정 없이 옆에 앉아 그 고운 모래가 세대를 견뎌 냈다 생각할 것이다.

우리 집은 부서진다.
 
* 성동혁 산문집 뉘앙스 서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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