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 좀 촌스러운 문구로 보인다. 옛날 핸드폰도 없고 가정용 전화를 보유한 있던 집이 드물던 시절, 서로 안부를 전하기 어려웠는데 오랜만에 먼 친척들이 만나면 서로 이런 말로 안부를 전하였다. 이런 제목도 영화제목이 될 수 있으려나, 얼핏 봐서 영화제목이 아닐 것 같은데 영화제목이었다. 내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icone)와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가 손을 잡은 영화라는 점이다. 나는 이들이 손을 잡은 영화라면 무조건 신뢰한다.
엔니오 모리꼬네라면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시네마천국'의 영화음악을 만든 영화음악 작곡자이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주옥같은 영화음악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많이 들어본 영화음악 상당수가 작곡자 이름을 확인해 보면 그의 이름인 경우가 많다. 그는 영화음악의 대가라고 할 만큼 영화음악이라는 장르에서 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나는 그의 음악이 좋아서 그의 영화를 보게 되었을 뿐, 영화전문가도 아니고 주야장창 영화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서 평소 영화를 볼 때 영화감독 이름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앤니오 모리꼬네 이름에는 항상 등장하는 감독이 있었으니 주세페 토르나토레였다. 그 역시 이탈리아 영화감독이다. 말레나, 시네마 천국.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 그 둘이 손을 잡은 영화는 모두 훌륭했다. 그런 기억이 있어 그 뒤에도 그들이 손을 잡은 영화라면 무조건 신뢰한다.
나는 이 영화도 무언가 큰 감동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보았는데, OTT에서도 동네 도서관 DVD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DVD로 된 영상물을 볼 수 있었다. 화질은 별로 시원치 않았다.
이 영화에서는 어느 시칠리아 노인(마테오,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얀니 분)이 등장하는데 자식들을 항상 걱정하고, 자식들은 아버지가 걱정할까 봐 자기들의 어려운 생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서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그의 눈에는 자식들이 어릴 때의 모습이 자꾸 현재 성장한 자식들의 모습에 오버랩된다. 아버지의 눈에는 자식들이 성장해도 항상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인과 사별한 노인은 소식이 없는 아들과 딸이 사는 곳으로 찾아다녀 보기로 한다. 모두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현실 속에 자식들은 그렇게 잘 사고 있지는 않다. 다들 겨우겨우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버지에게 잘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큰아들은 우울증으로 이미 자살했고, 의원이 되어 있을 아들은 의원 밑에서 서류정리 하는 일이나 하고 있고, 유명한 음악가가 되어 있을 아들은 큰 북이나 두드리고 있고, 디자이너 겸 모델이라고 하는 딸은 가끔 속옷 모델 일을 하고 있으며, 통신회사의 중역이 되어 있다는 딸은 전화교환원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렵게 살고 있음을 아버지에게 알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아버지를 속이면서 이루어지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런 자식들의 힘든 상황을 아버지는 눈치채지만 끝내 모른 척한다. 모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자식들에게는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왜 그렇게 속였어?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그러면 도와줄 수도 있을 텐데,라고 한다거나 네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이런 말을 해봐야 자식들은 마음이 더 불편할지 모른다. 때로는 서로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이 서로의 마음이 편할지 모른다.
자식들이 힘들게 살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죽은 아내의 비석 앞에서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라고 거짓으로 고백한다. 죽은 아내에게도 자식들의 고달픈 현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 잘살고 있으니 저 세상에서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지위가 높지 않고 유명해지지 않고 고달프게 살고 있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잘 지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아이에게는 세상은 즐거운 곳으로 보이게 하려는 아버지(귀도, 로베르토 베니니 분)의 눈물 나는 노력이 나오는데, 이런 영화는 우리에게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삶은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듯 따뜻한 휴머니즘적인 성격의 영화를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이 영화는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다른 영화와 비슷하게 그의 성향을 드러내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안타깝게 몇 년 전 엔니오 모리꼬네는 별이 되었다. 그의 영원한 동지였던 주세페 토르나토레라도 오랫동안 살아서 우리들의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향수를 충족시켜 주고,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주길 기원한다.
그가 죽은 아내의 비석 앞에서 독백이던 문구를 적어본다.
"세상은 그렇게 멋진 곳이 아니란 거야, 멀리서 지켜보니가 멋있게 보였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