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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an 31. 2023

후-베조차 반쪼갈 난, 최종 학력이 천박한 시대에

한 문창과(졸업예정자)가 식탁 위를 걷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로 모든 계정(그렇다, 여러 개였다)을 삭제했다. 이제 밈을 배울 데가 없다는, 마케팅 상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으나, 안일하고 편안한 방법에 유머감각을 의존하기로 했던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그래도 포기 못한 낡은 후레쉬베리와 판타지 꼰대 같은 첫 문장(눈마새)을 꽉 쥐고, 이 대단한 기회를 응접 하기로 한다. 이럴 수가... 들여 쓰기가 안 된다.


우선 철학과 농담 좀 훔쳐서 미안합니다. 세상도 팍팍하니 장발장이라고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2년 전 브런치 입성에 실패했을 때, 이런 글을 제출했었다. 아래가 전문이다.



말을 꺼내자면 가족 이야기를 빼놓고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굴레이자 글쓰기의 원동력이기도 한데, 내 가족은 부모와 개로 구성되어 있다. 친척들과는 일방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일 년도 더 된 소설에는 이렇게 써두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경험이 있다. 그것을 후에 나쁘다고 하든 힘들었겠다고 하든 어떤 평가를 내리기 전부터 사람에게는, 태어난 지 하루 된 갓난아기에게도 경험이란 게 있다. 경험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가진 인간들이야말로 모른다. 그래 너에게도 경험이 있구나, 그 사람에게도 경험이 있었겠구나-같은 말을 꼭 완충제처럼 쓰려고만 한다. 아니다. 경험은 그냥 있는 거다. 그가 겪은 일이란 건 누가 들추어 보든, 그 자신이 버리든 간에 일단 존재한다. 적어도 너 사춘기구나 중이병이구나 너 꼰대구나... 같은 소리를 하기 전까지는 잔뜩 부푼 밀가루 반죽처럼 커다란 부피를 가지고 거기에 있다.

(……)

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 속에는 어제의 피해자밖에 남지 않지만 나는 계속해서 오늘과 내일을 견뎌낸다. 그러니 사람으로서 너에게 해줄 말이 많이 남았다. 고고야, 나는 너를 여기에, 이 모든 사람 앞에 남겨 두겠다. 너는 내 영혼과 시간의 동생이다. 나는 네 오늘과 미래다.     

일기에서 발췌해 쓴 소설을 다시 에세이로 옮기다니, 우려먹기도 이보다 심할 수가 없을 거다. 하여간 이 이야기는 길고 지난하며 듣기에 불쾌하므로 이 정도로 옮긴다. 무엇보다도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두 다 아는 것에 관해서는 여기에 쓰고 싶지 않다. 혹여 몰랐더라면, 그렇게 해서 글을 읽는 사람에게 특별한 충격 같은 것을 주고 싶지도 않다.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강의 시간에 듣기를 에세이는 사실 아름다운 문장의 농축액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것을 쓸 자신이 없고, 단지 누군가 이걸 좋다고 여긴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의 ‘좋음’은 옳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과는 별 상관이 없을 터다. 소설가의 에세이 중 <일기>(황정은, 창비)라는 제목을 가진 글을 읽고 난 뒤 일기에 가까운 ‘에세이’를 쓰고 싶기도 했다. 내가 가진 것은 비록 거칠고 보잘것없겠지만. 그래도 나를 판단할 수 있다는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쓰기로 했다. 이렇게 결심을 한 건 종강 전이므로 종강-직전-버닝 상태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단편 소설 너덧 편을 고쳐 쓴 후 넌더리가 났던 것일지도 모르고.

쓴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제는 지긋지긋한 하체 통증에 화가 나 갑작스레 병원에 다녀왔다.

도수치료나 주사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지만 난 실비보험이 없어서(있었을 때조차 유병력자 가입이었고, 도수치료는 보장종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모레 주사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진통제를 먹으니 통증이 없는 가벼운 몸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것만 같았다. 착각이겠지! 사람은 원래 있었다 없었다 있었다 하는 과정 중에 이러저러한 충동을 느끼니까. 그래도 그게 얼마인지, 사치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비록 밤에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지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아침에는 또 몸이 가볍다.

고통에 관해 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위트가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글은 이십 년 후에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막 <되살리기의 예술>(다이애나 애실, 이은선 옮김, 아를)을 읽고 감탄해서 그럴지도. 이럴지도 저럴지도. 난 늘 이런 식이니 읽으려면 적응해야 하는데, 나조차도 아직 적응이 덜 됐다. 하여간 아직 나는 고통스럽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 인류는 항구적인 통증에 익숙해져 있으니, 나를 평범하다고 칭하는 건 자기기만보다는 희망적인 비관에 가깝지 않을까. (제대로 된 낙관이야말로 어려운 일이니까.) 어쨌든간 나눌 만한 일기를 쓴다는 건 재미있는 작업이겠지.

고통과 가깝긴 하지만 즐거운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버르적거리며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의 인도로 두 가지 ‘복원’ 영상을 보았다. 나는 재창조라는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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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로고가 마인크래프트로 바뀐 시기에 이걸 보다니, 의미심장하기도. 복원이란 일종의 개척일까? 난 환경에 관심이 조금 있어서 있는 물건을 고쳐 쓰는 걸 선호하고(실천은 안 하는 듯) 전문가가 만지는 전문 물건의 이야기는 재미있는 법이니까. 특히 빵칼과 커피 그라인더라니 안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고치는 것이 환경에 좋은지, 공장에서 새로 생산해 바꾸어 쓰는 게 더 좋은지 모르겠지만, 낡고 너절한 물건을 쓰다듬어 다시 쓴다는 데에는 어딘지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 내게는 통증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를 쓰다듬어서 새로 쓰는 것만이 내가 가진 힘이니까.

이 ‘에세이’를 쓰는 동안 내가 조금은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즈음 드는 해외여행 욕구(미디어와 주변 경험에 의해 미화된 게 분명한)를 잠재울 수 있기를. 난 해외는 고사하고 제주도에 가본 적도 수학여행의 기억밖에는 없다. 그러니 앉아서 글을 쓰는 편이 훨씬 익숙하고 개인적으로 도움이 될 일이다.

그래도! 독일에 가서, 아무 헌책방에 들러 산 아무 책을, 시골에 앉아 조금씩 읽어나가는 순간의 기억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난 독일어를 모른다.



세상에. 들여 쓰기가 안 된다.




이미 들여 쓰기 타령도 한 번 했었다.

위의 수필이 이토록 오래되고 재미없는 농담으로 연재를 시작한 사유이다. 젊은 베르테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나의 베르테르에 관해서는 말할수록 끝이 없는데, 이만 줄이자. 자기소개 끝.


문창과 생존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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