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8' [■]이런 면

도 저런 면도 있는 거제/수국

by DHeath

다 진 것보단 피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수국을 찾아 떠났다. 그런데 하필이면 장마. 장맛비는 지루하고, 진득하고, 끈질기게 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번 장맛비는 다르다. 태풍이라도 온 것 마냥 쏟아붓는다. 비는 피는 꽃에겐 상냥하고, 지는 꽃에겐 잔인하다는 사실. 그러나 몰아치는 이 비에는 피고 있든 지고 있든 다 망가져버릴 것 같았다.

경계들

비에 흔들리기라도 한 건지 바다도 뿌옇고, 다음 비를 머금은 구름도 뿌옜다. 그래도 드문드문 꽃을 활짝 틔운 수국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전이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명소에는 아침 일찍 도착한 여행객들이 많았다. 나는 그 무질서 속에서 감상을 방해받는 게 싫어 부러 사람 없는 어느 길목을 찾아다녔다.

수국은 처음엔 청색을 띠다가 나중엔 자색으로 색이 변하기도 하며, 토양의 성질(산성-알칼리성)에 따라 발현되는 색이 달라지는 생리적 특성이 있다. 길 구석구석에는 이르게 찾아온 덕분인지 내가 좋아하는 청색 계열의 수국이 더 많이 보였다. 혹시 모를 보라색 수국을 발견할 가능성을 염두해 보라색 옷과 보라색 컨버스를 신고 나섰지만 보라색 수국은 운전 중에 2번 스친 몇 송이 없는 꽃들이 전부였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보는 여름 꽃이 그저 반가웠다. 꽃으로 보이는 부분이 사실상 꽃받침이어서 삽목으로만 번식이 가능할지라도 풍성하고 폭신폭신해 보이는 수국을 보는 일은 늘 좋다. 색깔에 따라 꽃말을 달리 한다고도 하는데, 사랑·진심·냉정 같은 마음에 관한 말들이다. 잘 번지고 충분히 커다래질 수 있는 게 마음과 닮았기 때문일까.

이런 면도 면이라 부를 수 있을까.

꽃구경을 잘하고, 파스타와 리조토를 먹었다. 납작한 빠게리도 면이라 불러야 하다니. 음, 변하는 내 마음도 이런 면이 있고 저런 면이 있으니까…. 그래야지. 그나저나 먹물 리조토가 너무 맛있었다. 연애 초반인 커플에겐 조금 무리가 있을 듯했지만.

작은 수국과 고양이

카페로 가는 길에는 안개때문에 꼭 외국의 이름 모를 숲이나, 제주도의 오름이 생각나는 산을 지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수국과 고양이를 만났고 맛있는 커피를 먹었다. 날씨는 흐려도 적당히 살아지는, 적당히 행복할 수 있는 면이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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