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JAPAN이 한국에 남긴 감정의 흔적
금지된 나라에서 온 음악
1998년,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정식 음반 발매도, 방송 출연도, 공연도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본 음악은 PC 통신, 압축파일, CD-R, 비디오테이프 등 비공식 경로를 통해 조용히 유입되었다. 이 문화적 검열의 틈새에서, 한국 대중이 가장 먼저 깊이 있게 수용한 일본 밴드는 X JAPAN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단순한 청각적 콘텐츠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자, 감정의 서사로 작동했다.
비극으로 수렴되는 서사
X JAPAN은 해체를 정점으로 완성된 서사를 지녔다. 카리스마적 리더 YOSHIKI, 신화화된 기타리스트 HIDE, 팀 내 갈등과 화해, 그리고 돌연한 해체와 죽음. 1997년 말 해체 직후 HIDE가 사망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닫힌 서사로 전유되었다. (1997년 12월 31일 해체, 1998년 5월 2일 HIDE 사망)
한국에서 이 구조는 음악 이상의 정서적 몰입을 가능케 했다. 해체는 상실이 아니라 정서적 완결로 작동했고, 그 감정의 잔여는 오히려 신화화를 촉발했다.
음악의 특징 - 감정의 과잉과 서정성의 균형
X JAPAN의 음악은 두 극단을 동시에 품는다.
하나는 ‘Endless Rain’, ‘Tears’, ‘Forever Love’로 대표되는 비애와 서정의 발라드. 다른 하나는 ‘Kurenai’, ‘Rusty Nail’, ‘Dahlia’에서 드러나는 격렬한 속도와 에너지의 록 넘버.
발라드는 감정의 절제와 폭발을 동시에 담아낸다. 클래식 기반의 피아노 구성, 고통과 승화가 교차하는 보컬은 감정을 고도로 구조화한다.
반면 록 넘버는 속도와 파열의 미학을 따르면서도 선율 중심의 정서를 놓치지 않는다. 에너지와 멜로디의 이질적 결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방식.
이 모든 감정 구성은 한국 대중 정서와 우연히 맞닿아 있었다. 절정적 감정 몰입, 과잉된 비애, 감정의 장르화. X JAPAN은 그것을 완전히 다른 문법으로 수행한 존재였다.
주목할 것은, 이 감정 구조가 언어적 차원에서도 유사한 이중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X JAPAN의 곡 제목은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었다. ‘Endless Rain’, ‘Tears’, ‘Forever Love’, ‘Art of Life’ 등은 일본어 및 일부 영어 가사와 제목의 조합을 통해 감정의 전달을 이중화했다.
이 선택은 감정의 보편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서구 정서 코드의 차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한국 청중에게는 당시 ‘일본어’가 암묵적으로 금기되었던 상황에서, 외래 감정을 일본어 없이도 수용 가능하게 만든 우회적 경로였다.
여기에 더해, 당시 한국 음악 팬들 사이에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외국 음악, 특히 일본과 영미권의 대중음악은 국내 음악보다 더 정교하고 세련된 감정 구조와 프로덕션을 지녔다는 것이다. 사운드의 밀도, 곡 구성, 장르적 완성도에서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청취 선택의 정당성을 강화해 주었다.
또한, 정식 유통되지 않고 소수의 경로로만 접근 가능한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은 일종의 우월감으로 작용했다. 금지된 것, 쉽게 닿을 수 없는 것에 먼저 닿았다는 경험은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태도이자 정체성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X JAPAN의 음악은 음향뿐 아니라 언어와 사회적 맥락의 층위에서도 이중적 거리두기와 몰입을 병행함으로써, 청자에게 더욱 깊은 감정적 접근과 문화적 자기동일화를 허용했다.
비쥬얼 쇼크 - ‘보는 음악’의 전위성
X JAPAN은 단지 음악이 아니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압도하는 시청각 종합예술. 비주얼계의 전위적 시도, 성 역할의 전복, 광기의 연출, 조명과 의상, 퍼포먼스의 극단적 구성.
그들의 공연은 록을 연극적 체험으로 변환시켰다. 한국 대중은 이 경험을 통해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몰입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획득했다.
이후 한국 아이돌 문화의 공연 미학 강화, 대형 콘서트 연출, 시각 중심 퍼포먼스는 모두 이 지점에서 간접적인 자극을 받았다.
일본의 록 음악, 왜 하필 그들이었는가
X JAPAN은 ‘해체된 밴드의 마지막 증언’으로서 유입되었다. 그들은 ‘서사의 끝’에서 도착했다. 해체와 죽음, 침묵까지 포함된 이야기를 정서적 구조로 전유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음악은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해석하는 것, 그리고 신화화하는 것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타 밴드들과의 비교는 그들의 특수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B’z는 일본 내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정서적 서사나 감정 몰입의 기반은 약했다. 음악은 탁월했지만, 이야기의 여백이 없었다.
GLAY나 LUNA SEA는 음악성과 스타일 모두에서 강렬했으나, 유입 시점이 X JAPAN 이후였다. 감정의 첫 통로가 이미 열려 있었기에, 이후 밴드들은 그 밀도를 반복하지 못했다.
BOØWY나 안전지대는 이미 시대적 흐름이 지난 상태에서 유입되어, 시의성을 잃은 채 받아들여졌다.
결국, X JAPAN은 가장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강한 정서적 밀도로 도착했기 때문에 특별했다. 감정을 여는 최초의 경로는 오직 한 번이며, 그 자리는 이미 그들에게 선점되어 있었다
금기와 기호, ‘X’라는 문화정치적 상징
1990년대 후반,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금기’였다. 그 시절 ‘X’라는 이름은 단순한 밴드명이 아니었다. 익명성과 저항, 검열된 기호, 존재하지만 명명되지 않는 것의 상징이었다. X JAPAN은 이름만으로도 금지된 세계의 대리 기호가 되었고, 실체 이상으로 일본 음악 전체를 대표하는 기호적 심벌로 작동했다.
(X JAPAN 이라는 이름은 X 라는 원래 밴드명에서 세계를 타겟으로 확장한 이름이다.)
한국 음악에 남긴 영향
X JAPAN은 이후 한국 대중음악에 두 갈래의 영향을 남겼다.
첫째, 발라드 작법의 구조화. 그들의 곡은 클래식 기반 화성과 감정 서사의 직선성을 결합했다. 이는 2000년대 한국 발라드 작곡가들이 자주 활용한 ‘일본식 발라드 구조’에 간접적으로 작용했다.
둘째, 무대 연출의 극장화. 그들의 공연은 록을 연극적 사건으로 구성하는 전례였고, 이는 훗날 퍼포먼스, 콘서트 기획, 몰입형 연출 등에 무의식적으로 작용했다.
일본 내 위상, 새로운 기원의 형성
X JAPAN은 일본 대중음악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한다.
그들은 서양 록의 수입을 일본 정서로 재구성한 첫 세대였으며, 메탈과 하드록을 대중화한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비주얼계’라는 서브컬처의 창시자이자 정점으로, 수많은 후속 밴드가 스스로를 ‘X의 후예’라 명명할 정도로 기원적 존재였다.
YOSHIKI는 음악뿐 아니라 패션, 예술, 클래식과 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장르적 아이콘으로 기능했다. X JAPAN은 단지 밴드가 아닌 문화적 현상이었다.
X JAPAN
오늘날 일본 음악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수많은 J-POP 아티스트가 한국 무대를 밟고, 팬덤은 국경을 넘어 연결된다. 그러나 X JAPAN은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신비로운 방식으로 기억되는 유일한 존재다.
그 이유는 단지 향수가 아니다.
그들은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감정화했고, 한 사회의 정서 구조를 상징한 음악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YOSHIKI 의 피아노와 드럼의 광기를 떠올린다. 그 광기에는 고통과 아름다움, 상실과 집착, 그리고 시대를 관통한 무언의 외침이 깃들어 있었다.
여담
제일 애정이 가는 앨범은 1991년 두 번째 앨범 Jealousy 이다.
그들의 다사다난한 밴드 스토리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영화 We are X (2016) 의 관람을 추천한다.
X JAPAN 의 노래를 모른다면, 발라드 모음집 BALLAD COLLECTION (1997) 을 처음부터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금방 간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끼게 될 것이다.
YOSHIKI 라는 인물은 사실 X JAPAN 그 자체라도 봐도 무방한데, 모든 것은 그의 컨트럴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사작곡 등 밴드의 핵심을 맡으면서 피아노를 섬세하게 연주하고, 그것과 정반대에 포지션의 타악기인 드럼을 어떻게 보면 무식하게 쳐대는 이 캐릭터는 사실 유일무이 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 당시 30분이 넘는 곡을 만들고 싱글로 발표하고 라이브를 하고 그것 또한 음반으로 발표하였다.
Art of life 라는 곡인데, 메탈과 클래식함을 동시에 느낄수 있는 곡이다.
X JAPAN 의 결성과 앨범발매 시기는 일본의 버블 경제와 맞닿아 있다. 연재중인 일본 중독이라는 브런치 북의 일본버블과 문화 아티클과 일본버블의 다양한 연재글을 같이 읽게 되면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japanjungdok)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 당시에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았기에 표절하는 것이 어느정도 거리낌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관련된 전후 맥락에 대해 흥미가 있다면, 일본음악의 리메이크에 관한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https://brunch.co.kr/@space-deer/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