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나를 초월하기 위해

by 우주사슴

나는 살아가며 다양한 영역에서 나름의 관찰과 경험을 쌓아왔다.


경험한 것의 참된 가치는 단지 사건의 축적이 아닌, 그것을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하려는 욕망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여러 장면들은 단순히 지나가는 인상으로 멈추지 않고, 구조적 이해로 나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충동은 나로 하여금 글을 통해 현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행동으로 이끈다.


나는 종종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어떤 이유로 이렇게 연결될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는 사유를 확장하려는 작은 통찰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질문을 문장으로 외화(外化)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추상적 통찰은 구체적 문장으로 옮겨지며,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구조화한다. 이렇게 쓰인 글은 단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사유의 방향성과 체계를 만들어 가는 나만의 도구가 된다. 결과적으로 글은 내 안에 쌓이는 지적 자산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글쓰기는 단지 나를 위한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내 생각을 공유 가능한 형태로 남긴다는 것은 누군가와 사유를 나누고, 공감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읽는 이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혹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글을 통해 누군가 나와 같은 길을 걸으며, 함께 사유의 여정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물론 그 여정은 언제나 쉽지 않다.


나는 글을 통해 구조와 의미의 진중함을 추구하며, 예술성과 독창성의 균형을 고민한다. 이로 인해 때로는 밀도 높은 표현이나 까다로운 해석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 글이 쉽고 친절한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일지라도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사유의 여유와 판단의 독립성을 지닌 독자만이 이 글을 읽고 끝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내 글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글은 내게 기록의 수단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며 어떤 생각과 관점을 품었는지, 나라는 존재가 한 시점에서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명확히 남길 수 있는 흔적이다. 그렇기에 글쓰기 작업은 언제나 어려우며, 불필요한 감정과 거짓된 정보를 피하고자 노력한다.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은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기록하려는 나만의 윤리적 긴장은 글쓰기를 더욱 정교하고 정제된 형태로 이끈다. 반복해서 읽으면서 검증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글이 체화된다. 나는 그것이 글쓰기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내게 글은 단순한 기록의 도구를 넘어 과거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는 문장은 그 시점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며, 당시 내가 어떤 틀로 세상을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사진이나 영상이 감각을 되살려준다면, 글은 사고의 구조를 복원해준다. 그래서 나는 종종 과거의 문장을 다시 읽으며,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한 사유의 확장을 경험한다.


글쓰기는 결국, 나를 정리하고 나를 초월하기 위한 행위다.


생각을 정돈하는 데서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 나와 나를 연결하고, 사유와 지식의 외연을 확장한다. 이 모든 과정은 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글은 단순히 나를 다스리는 언어가 아니라 나를 넘어서는 길이다.

그 길에서 누가 함께 걷든, 걷지 않든, 나는 계속 걸어갈 것이다.


글쓰기는 내 사유의 방법이자,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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