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동영상을 경계하라

쇼츠에의 대항

by 우주사슴
짧은 영상 속에 숨겨진 긴 함정



우리는 지금 60초 미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로 대표되는 숏폼 콘텐츠가 일상을 점령했다.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손가락을 위로 밀어 올리며 다음 영상을 소비한다. 분명 쇼츠에는 장점이 있다. 짧은 시간에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문가의 노하우를 간편하게 접할 수 있으며, 때로는 진정한 영감과 동기부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가려내는 이면에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인식 체계를 은밀하게 재편하는 위험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 흐리기


쇼츠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정보의 진위를 판별할 시간적 여유를 박탈한다는 점이다. 60초라는 극도로 압축된 시간 안에서는 팩트체킹이 불가능하다. 제작자는 임팩트를 위해 과장하고, 시청자는 빠르게 스와이프하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이것만 알면 부자가 된다", "의사들이 숨기는 진실", "역사 교과서에 없는 충격적 사실" 같은 자극적 제목의 영상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이런 내용들이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나 왜곡된 정보라는 점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더군다나 제작자는 지식이 많거나, 제대로 된 철학을 가진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즉 돈을 위해서 어디선가 만들어진 정보를 다시 재생산 하는 구조가 되는데, 이는 뉴스의 복사 붙여 넣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기자들의 자질 문제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수 있다.


특히 무서운 것은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영상을 뉴스나 교육 자료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적 지식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된 설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현상의 핵심을 놓치거나 잘못된 인과관계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가짜뉴스와 진짜 정보를 구분하지 못한 채, 그릇된 지식 위에 판단을 내리게 된다.


확증편향의 덫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하여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계속 추천한다. 이는 확증편향을 극도로 심화시킨다. 보수적 성향의 사람에게는 보수적 관점의 영상만, 진보적 성향의 사람에게는 진보적 관점의 영상만 노출된다.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은 온갖 건강 정보 영상에 둘러싸이고,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은 투자 관련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헤엄친다.


문제는 이런 환경에서는 반대 의견이나 다른 관점을 접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자신의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계속 받아들이면서, 사고는 점점 편향되고 경직된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하고 극단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게 되고, 중간 지대나 회색 영역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정보 버블 안에 갇혀, 진정한 소통과 이해로부터 멀어진다.


이것은 같은 사회에 살지만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사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전 세계에서 보여지는 집단간의 갈등은 이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갈등의 구조가 점점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동적 사고의 습관화


쇼츠는 기본적으로 타인이 편집하고 해석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구조다. 60초 안에 결론까지 제시되는 완결된 패키지를 소비하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퇴화한다. 복잡한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거나, 여러 관점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생략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수동성이 일상생활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어떤 식당을 갈지, 어떤 옷을 입을지, 심지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지까지 쇼츠의 추천과 평가에 의존하게 된다. "이 카페는 가지 마세요", "이런 사람과는 연애하지 마세요", "이 직업은 절대 선택하지 마세요" 같은 영상들이 개인의 선택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주체적 판단력을 잃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종속되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점은 "이건 하지 마세요" 라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정도로 신뢰 가능한지에 대한 부분이다.


시간이라는 가장 소중한 자원의 낭비


쇼츠의 가장 교묘한 함정은 '짧다'는 착각이다. 하나의 영상은 분명 짧지만, 연속된 소비는 결코 짧지 않다. 무의미한 재미를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쇼츠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시간의 기회비용은 엄청나다. 책 한 권을 읽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의미 없는 킬링타임으로 소비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소비가 중독성을 띤다는 점이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짧고 강렬한 콘텐츠에 익숙해지면, 긴 호흡의 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거나, 책 한 권을 완독하거나, 깊이 있는 사색에 잠기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우리는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파편화된 경험의 위험


쇼츠는 본질적으로 편집된 하이라이트다. 영화의 명장면만 모은 영상, 책의 핵심 내용만 요약한 영상, 여행의 인생샷만 모은 영상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런 파편적 경험은 전체적 맥락과 깊이를 놓치게 만든다. 영화는 전체 스토리의 흐름 속에서 감동이 만들어지고, 책은 저자의 논리적 전개 과정에서 깨달음이 생긴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계획하고 준비하고 경험하는 전 과정에서 나온다.


편집된 하이라이트만 소비하다 보면, 완전한 작품을 감상하는 능력과 인내심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을 빠르고 자극적인 요약으로만 접하려 하고, 깊이 있는 몰입 경험을 회피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표면적이고 파편적인 경험만 쌓아가면서, 진정한 감동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나의 거리두기,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의도적으로 쇼츠를 보지 않는다. 물론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하다. 때때로 친구가 보여주는 영상이나 우연히 마주치는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습관적 소비는 철저히 피한다. 대신 그 시간을 책을 읽거나, 긴 호흡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데 사용한다.


이런 선택이 때로는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최신 밈이나 트렌드에서 소외되기도 하고, 빠른 정보 습득의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더 큰 가치와 맞바꾸는 것이다. 나는 내 사고의 주도권을 지키고,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을 확보하며, 완전한 경험을 통한 진정한 감동을 선택한다.


이번에 업데이트 된 카카오톡의 숏폼의 강제 도입은 의도하지 않는 정보를 일부러 주입하려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쇼츠가 대세가 됨에 따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으로의 성격을 띄고 방향성을 새로이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이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진실의 구분, 확증편향, 시간 낭비 등의 결과로 귀결될 것이기에 안타깝다.


되찾아야 할 것들


쇼츠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능동적 대안이 필요하다.


정보는 다양한 출처에서 교차 검증하고, 반대 의견도 적극적으로 찾아 들어야 한다.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의미 없는 킬링타임 대신 생산적인 활동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파편적 요약 대신 완전한 작품을 끝까지 경험하는 인내심을 기워야 한다.


60초의 편리함과 즉각적 재미 뒤에는 깊이 있는 사고와 주체적 판단, 그리고 완전한 경험을 앗아가는 긴 함정이 숨어 있다. 쇼츠의 장점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장점들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의식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이 작은 화면에서 벗어나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나는 이런 흐름 속에서 당당히 거부하고자 하며 대항 중이다. 그 방법을 공개한다.


첫째, 음악을 듣는다.


음악의 감상과 이해 그리고 심취는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이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그리고 처음 들었던 그 나날들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타임워프를 하는 기분도 든다. 이 아름다운 취미가 나와 오래 해왔다는 것에 있어서 최근 매우 고마운 감정이 든다. 매번 익숙한 상황이지만, 나는 여유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은 물론이다. 음악을 들으며, 아티스트의 메시지와 화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 행위 안에서는 절대로 쇼츠가 나의 시간을 침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째, 글을 읽거나 쓰거나 글감을 다듬는다.


글은 사고를 깊게 하고 표현력을 단련시키는 도구다. 짧은 영상은 순간의 자극으로 머리를 채우지만, 글은 시간을 거치며 사유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글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유의 도구로 사용한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텍스트가 던지는 문제와 질문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게 한다. 글쓰기는 더 적극적인 몰입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글감의 배열까지 고민하며, 나의 사고와 표현을 정제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의 단기 자극과 거리를 두고, 내적 세계를 확장한다. 글을 다루는 시간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내 삶의 리듬과 사고의 깊이를 회복하는 행위다.


셋째, 할 일을 미리 생각한다.


주로 아침 출근길에 머릿속에서 그날 할 일을 생각하곤 한다. 하루를 계획하면, 무작정 자극에 끌려다니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나는 매일 아침이나 전날 밤,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 이때 단순히 목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행동의 목적과 우선순위를 고민한다. 어떤 일을 언제, 어떻게 할지 명확히 하면, 쇼츠와 같은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하루를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 계획을 통해 나의 시간과 주의는 외부에 빼앗기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활동에 집중될 수 있다. 하루의 목표가 명확할수록 몰입의 질도 높아진다. 귀가 길에도 사실상 집에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 (1~2시간 남짓) 이므로 무엇을 하고 내일 입을 옷을 결정하며 집에 돌아간다.


넷째, 여유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 즉 끊임없이 뭐를 한다.


쉬지 않고 뭔가를 한다는 전략은 단순한 과로가 아니라, 불필요한 자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장치다. 현대인은 여유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틈을 쇼츠나 소셜 미디어가 채워버린다. 나는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의도하며, 작은 목표들을 연속적으로 수행한다. 단기적 피로는 발생할 수 있지만, 깊은 몰입과 성취감이 그 불편을 상쇄함과 동시에 나는 나태하지 않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중이다. 나의 하루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집중의 흐름 속에서 완결감을 갖는다. 여유 시간을 없애는 것은 단순히 바쁘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주도적 삶을 확보하고 외부 자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다섯째, 정해진 시간에 잔다.


규칙적인 수면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통제력과 집중력을 회복하는 핵심 조건이다. 쇼츠에 끌려 늦은 밤까지 깨어 있는 순간, 우리는 뇌와 몸의 리듬을 잃는다. 나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충분한 수면을 확보함으로써 다음 날의 몰입과 사고를 유지한다. 수면을 지키는 습관은 하루의 리듬을 일정하게 만들고,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된다. 좀 더 확장하면 수면패턴이 일정한 규칙적인 삶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쇼츠와의 싸움은 단순한 콘텐츠 거부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주의와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삶의 리듬과 몰입을 회복하는 선택이다. 짧은 자극을 피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선택하는 삶은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적 세계를 단단하게 하고 사고의 깊이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음악 속에서, 글 속에서, 계획 속에서, 몰입의 흐름 속에서 나는 쇼츠가 빼앗는 시간을 되찾는다. 이어폰을 끼고 글감을 다듬으며, 화면 속 짧은 순간들을 흘려보내고 나만의 긴 호흡 속으로 들어간다.


이 길이 바로 내가 선택한 쇼츠에 대한 대항이자, 나의 시간을 지키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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