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되지 않은 무게 1.8kg
선자령은 백패킹의 성지입니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거리, 탁 트인 시야와 거대한 풍력발전기, 그리고 넓은 평지까지. 특히 법적 구속력 등 특별한 제약이 없어 많은 이들이 입문 장소로 이곳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로움은 역설적인 풍경을 만듭니다. 최근 이곳에서 수거한 1.8kg의 텐트 펙(Tent Peg)들이 그 증거입니다. 부러지고 휘어진 금속 조각들 사이에 아직 쓸 수 있는 20여 개의 펙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권이 강제로 끊어진 흔적이자 결과입니다.
왜 유독 백패킹 성지라 불리는 곳에 이런 잔해들이 쌓이는 걸까요? 여기에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과 유사한 심리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찬 바람에 내 물티슈 한 장이 날아갔다고 가정해봅시다. 당혹감 속에 그것을 쫓으려던 찰나, 주변 나뭇가지에 이미 걸려 있는 다른 티슈 조각들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 묘한 심리적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저 정도는 흔한 일이구나라는 심리적 면죄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안도감은 소유자의 책임을 순식간에 마비시킵니다. 누군가 남겨둔 단 하나의 부러진 펙은, 그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장비를 버려도 되는 곳이라는 무언의 허가증이 됩니다. 결국 회수된 1.8kg이라는 무게는 사용자들이 감당하기 싫어 두고간 양심의 총량이자, 누적된 방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텐트 펙이 얼마나 대수롭길래?"
캠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직접 피칭한 텐트 펙에 발이 걸려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캠핑장에서는 펙에 야광 표식을 하거나 반사재를 달아 사고를 예방하곤 합니다. 텐트를 친 사람이 눈앞에 있고 관리되는 환경에서도 펙은 늘 경계해야 할 위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표식도 없이 땅에 박힌 채 주인마저 떠나버린 펙은 어떠할까요? 그것은 이제 장비가 아니라 언제든 누군가를 찌를 수 있는 강철 금속일 뿐 입니다. 흙과 눈 속에 교묘히 숨겨진 이 금속 조각은 야간 산행객이나 트레일 러너의 발목을 노리는 치명적인 흉기가 됩니다. 개인의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합리화는 현장에서 타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는 물리적 가해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정말 극한 환경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영하 20도의 혹한, 마비된 손가락, 텐트를 집어삼킬 듯한 돌풍. 선자령의 겨울은 가혹합니다. 그 상황에서 펙 회수를 포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해 가능하다는 것과 책임을 다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극한 환경은 내 준비와 판단의 한계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펙을 회수하지 못한 것이 정말 생존의 문제였다면, 그것은 내가 그 환경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거나 장비 운용의 부족했다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인정하는 것에서 책임은 끝나지 않습니다. 남겨진 물건은 유기가 아니라 부채여야 합니다. 위치를 기록하고, 다음 기회에 반드시 회수하겠다는 의지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현장을 떠나 있는 동안 방치된 물건이 타인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면, 나중에 가져가려 했다는 의도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발목을 노리고 있는 금속 앞에서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않습니다.
수거한 고철 더미에서 20여 개의 쓸만한 펙을 골라내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닦았습니다. 이것은 타인의 실수를 덮어주는 선행이 아닙니다. 누군가 무책임하게 끊어버린 물건의 생애를 다시 연장시켜, 단절된 책임의 고리를 물리적으로 이어 붙인 것입니다.
백패킹의 본질은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져간 모든 물질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회수하는 자기 관리의 완결성에 있습니다.
장비와 준비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배낭 안으로 복귀할 때, 비로소 산행은 누구에게도 자연에게도 빚지지 않은 채 완성됩니다.
배낭을 닫고 집에 오기 전 확인해 주십시오.
오늘 내가 펼쳐놓은 것이 모두 여기 있는지,
2026년 4월 11일 클린하이커스의 클린 하이킹 활동의 일환으로 대관령 휴게소부터 선자령까지의 길에 있는 쓰레기를 75kg 가량 수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