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의 본질과 자유에 대하여

자유롭기 위해서 우리는 뭘 생각해야 하는가?

by 우주사슴
글에 앞서,

처음 백패킹을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저 쉬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브레이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 반응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해 온 자유와 선택이
어떤 지점에서 더 이상 자유로 남지 못하게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한 번쯤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돌아와 읽어도 좋습니다.


백패킹은 흔히 자유의 언어로 설명됩니다. 배낭 하나로 자연에 들어가고,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경험이라는 서사입니다. 이 설명은 완전히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빗겨나 있습니다. 자유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백패킹을 이동이나 숙박의 방식으로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본질에서 멀어집니다. 그것은 형식입니다. 본질은 훨씬 더 불편한 조건 위에 놓여 있습니다.


백패킹은 외부로 비용을 전가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내가 들고 들어간 모든 물질을 스스로 운반하고, 펼쳐놓은 것을 통제하며, 끝내 모두 회수하는 행위입니다.


image.png 미 서부를 종단하는 PCT 코스는 모든 행동과 제약을 설계하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다.


이 조건이 충족될 때 하나의 행위는 닫힙니다.

여기서 말하는 ‘닫힌 행위’란, 바로 이 완결성을 의미합니다.


이 정의는 도덕적 선언이 아닙니다. 구조적 조건입니다. 행위가 닫히지 않는 순간, 그 영향은 외부에 남습니다. 남겨진 물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경험을 훼손하거나, 공간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때로는 명백한 위험으로 전환됩니다.


image.png 스웨덴 쿵스레덴 코스, 특별한 행동에 제약은 없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유를 말합니다. 그러나 통제가 없는 자유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내가 펼쳐놓은 것을 끝까지 닫을 수 있을 때만, 자유는 타인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치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는 종종 내 마음대로 하는 상태로 오해됩니다. 간섭이 없고, 규칙이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행위는 필연적으로 외부에 영향을 남기고, 그 영향은 다시 개입과 규제로 돌아옵니다. 역설적으로 자유가 사라지는 가장 빠른 경로는 자유를 통제 없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image.png 북한산 트레일 런닝 대회 금지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방종과 무질서는 자유처럼 시작됩니다. 규칙을 최소화하고,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초기 국면에서는 해방감이 있습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용자가 늘어나면 상황은 빠르게 달라집니다. 소음과 위험, 훼손이 누적되고, 결국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조용히 머무를 자유입니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관리와 규칙, 출입 제한입니다. 자유처럼 출발한 무질서는, 더 강한 통제로 귀결됩니다.


image.png 우리나라는 리스크를 취하는 것 대신 금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공유지가 빠르게 황폐화되는 이유도 같습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은 평등해 보이지만, 책임 없는 사용은 공간을 소모시킵니다. 이때 자유는 확장되지 않습니다. 책임 없는 자유는 스스로를 잠식합니다. 반대로, 스스로의 행위를 닫고 영향을 관리하는 통제는 자유의 지속성을 높입니다.


그래서 자유는 출발 조건이 아닙니다. 통제의 결과입니다. 내가 만든 영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인식하고, 그 경계를 스스로 닫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는 유지됩니다. 통제되지 않은 자유는 가장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제 구조를 보아야 합니다.


국내의 백패킹은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에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멈춰 섭니다. 이동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고, 핵심은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로 이동합니다. 하루의 성취는 얼마나 걸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자리를 확보했는가로 판단됩니다.


탁 트인 조망,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형, 이미 다져진 평지. 이 조건을 만족하는 지점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같은 지점에 모입니다. 이 순간 행위의 구조는 바뀝니다. 이동은 선형으로 분산되지만, 체류는 점으로 집중됩니다.


image.png 제주도 비양도의 풍경



이 점유된 공간에서 우리는 자연을 생활 공간으로 재구성합니다. 버너가 올라가고, 음식이 펼쳐지고, 술이 따라집니다. 도시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전개됩니다. 문제는 이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체류가 길어질수록 소비는 늘어나고, 물질은 축적됩니다. 이 물질은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책임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회수한다면 외부로 전가되는 영향은 줄어듭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계가 드러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물질을 완벽히 회수하더라도, 동일한 지점에 체류가 반복되면 공간 자체는 변형됩니다. 텐트가 반복적으로 설치되는 자리의 토양은 압착되고, 식생은 사라지며, 원래의 상태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 변화는 남겨진 것이 아니라, 머문 것 자체에서 발생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층위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물질의 문제입니다. 회수를 통해 통제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밀도의 문제입니다. 회수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행위가 닫히지 않으면 영향은 외부로 전가됩니다.
행위가 닫혀도 밀도가 높으면 영향은 축적됩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행위 방식과 공간 구조입니다.


이제 시선을 캠핑장으로 옮겨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캠핑장을 남겨도 되는 공간처럼 인식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캠핑장은 닫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아니라, 닫힘이 외주영역으로 이동한 공간입니다. 사용자는 펼치고 떠나지만, 남겨진 것은 관리자가 처리합니다. 행위는 여전히 닫히지만, 그 종료 주체가 개인에서 관리 시스템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영향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내부에서 처리되고 있을 뿐입니다. 청소, 폐기물 처리, 시설 유지, 환경 비용.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흡수됩니다. 캠핑장은 영향이 없는 공간이 아니라, 영향이 관리되는 공간입니다.


image.png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야영장


동시에 캠핑장은 밀도를 의도적으로 높인 공간입니다. 사람을 모으고, 영향을 집중시키고, 그 대신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서 통제합니다. 영향은 집중되지만 관리됩니다. 자유는 허용되지만 비용은 내부화됩니다.


반면 백패킹은 다릅니다. 밀도는 집중되지만, 관리 시스템은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국 두 공간은 이렇게 대비됩니다.


백패킹은 개인이 닫아야 하는 공간입니다.
캠핑장은 시스템이 대신 닫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둘 모두 하나의 조건 위에 있습니다. 행위는 반드시 닫혀야 합니다. 이 조건이 무너지면 결과는 동일합니다. 공간은 훼손되고, 결국 외부의 통제가 개입합니다. 자유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질문은 단순해집니다.


내가 남기지 않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만든 영향이 어디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질문 없이 말하는 자유는 대개 방종에 가깝습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백패킹은 자유를 얻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이 만든 영향을 끝까지 회수하는 행위입니다.


그 닫힘이 완성될 때, 자유는 결과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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