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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Mar 21. 2024

소망을 새기다.

지독한 소망이 있었다.

나에게 지독히도 들러붙어

나의 눈길과 숨길이 머무는 곳마다 나타나

멈추지 않고 내 안과 밖을 넘나들었다.


어떤 소망은 이루어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았다.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내 손으로

지독한 소망의 얼굴을 씻겨주었다.

그리하여 조금은 더 또렷해진 그 얼굴을

내 눈길과 숨길이 닿는 곳마다 새겼다.


볕에 마실 나온 꽃잎마다,

지천으로 솟구치는 초록 잎마다,

쓸쓸히 불어오는 바람마다,

뽀얀 입김 사라지는 저 하늘 언저리까지

빠짐없이 새겨두었다. 


그사이 지독한 소망이 찾아오기 전

나에게 기거하던 크고 작은 소망들은

겸손하게 자리를 비우고 사라졌다.

대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독한 소망을 품어본 사람은 안다.

그 하나의 지독한 운명이

삶을 간결하게 해 준다는 것을.


셀 수 없는 간절함으로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게 기도해 본 사람은 안다.

나의 기도가 새겨진 모든 것은 아무 말없으나

이루어지게하고 이루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나의 기도를 저버리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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