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6 - 선 결제, 후처리 시스템
선 결제, 후처리 시스템 - 채권과 채무 관계
과거 아날로그 시절 현금을 사용하던 때는 재화를 사려면 화폐를 지불하고 현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이후 현대 사회에서는 신용사회로 바뀌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여 선결제하고 미래의 특정 시점에 상환하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카톡 시스템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졌다. 카톡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요청할 때 가령 업무를 요청할 때, 한 번에 다수의 사람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보내 일을 도모할 수 있어 효율성 면에서 크게 진화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여러 업무를 다중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 그러면서 결과를 체크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업무을 멀티로 동시 진행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에는 딜레마가 따른다. 카톡 시스템이 거시적으로 다중에게 업무를 분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나 역시 그만큼 많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마치 신용카드로 미래의 노동 가치를 담보로 재화를 구입하는 것과 유사하다. 현대인들은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신용카드를 통해 자동차, 부동산, 명품 등의 재화를 소유할 수 있는 신용사회를 살고 있다. 그러나 재화를 소유한 순간의 기쁨은 잠시, 이내 미래에 갚아야 할 카드 결제일이 다가온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카톡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하고 무한한 노동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동시에 다수로부터 채무를 지게 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내가 그들에게 보낸 업무 요청은 일종의 채권이며, 그 채권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이다. 과거에는 채권과 채무 관계가 ”일 대 일“의 관계였다면 카톡 시스템하에서는 ”다 대 다“로 관계가 변했다. 즉, 다수에게 채권을 갖는 권리가 생긴 만큼, 각자 다수의 사람들에게 채무를 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선 결제, 후처리 시스템은 단기적으로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관리해야 할 업무와 관계를 늘리는 부담을 초래하게 된다. 이는 현대 사회가 신용을 기반으로 재화를 미리 소유하지만, 결국 그 대가를 미래의 노동으로 상환해야 하는 방식과 동일한 흐름을 보여준다.
카톡 시스템을 통해 다수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요청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채권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이들의 요청에 응답해야 하는 채무자로서의 역할도 맡게 된다. 이 시스템은 상호 간에 끊임없는 교환과 요구가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며, 결과적으로 채권과 채무의 무한 순환을 가져온다.
따라서 이러한 거시적으로 바뀐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의 존재에 신경 쓸만한 여력이 없다. 즉, 우리는 다중에게 둘러싸인 거시적 공간을 살아가는 하나의 입자로서 존재한다.
다중에게 산발적으로 쏟아내는 채권과 채무의 관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재화와 해야할 의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마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많은 재화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그 대가로 평생 상당한 채무를 갚아야 모기지론처럼 말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복잡한 상호의존적 관계망을 반영하며, 기술의 발전이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결국, 카톡 시스템에서 형성되는 채권-채무 관계는 개인을 더 바쁘게 만들고, 무한한 책임을 떠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나와 그녀는 각자 바쁜 일정에 쫓겨 실제로 만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존재론적 성격으로서 물리적인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리운 우리가 만남을 줄이면서 최대한의 효율적 만남을 가지기 위한 방법론으로 카톡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었다.
카톡은 우리의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전달 창구로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카톡 메시지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지냈어?“
"응, 요즘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네.“
"나도 그래. 우리 주말에 만날 수 있을까?“
"한번 조정해볼게.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카톡은 그들에게 중요한 대화를 이어가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만날 시간이 부족한 남녀에게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게 하였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로 작용했다. 문자와 이모티콘, 짧은 메시지를 통해 그들은 일상의 틈새를 메우며 소통했고, 카톡으로 쌓인 대화는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가상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