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일본어 잘한다고 일본취업 잘하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결국 언어의 본질은 명확한 의사소통

by Teddy

공공기관의 흔한 행정직으로 조용히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소싯적(오타쿠 시절)에 재미 삼아 따둔 JLPT를 입사할 때 적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갑자기 육아휴직을 들어가게 된 전임자의 자리를 메우러 정부에서 주관하는 일본취업지원사업 담당으로 발령받았다.

그렇게 나는 일본취업을 원하는 분들을 돕는 일본행 티켓 판매 상담원이 되었다.


2018년 8월의 일이었다.


물론 일본어는 조금 할 줄 알았고 취준생 시절에 국내 일본계 기업에 최종면접에 여러 번 가본 적은 있었지만, 일본취업 시장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었기에 급한 대로 2주 정도 교육을 받고 바로 실전 상담에 투입되었다.


그리하여 대망의 첫 1:1 컨설팅의 대상자는 졸업을 앞둔 일문과 출신 26살 김미소 씨. 서울권에 위치한 괜찮은 대학교 출신에 일본어 자격증도 JLPT N1(최고 등급) 보유, 일본어 실력도 상당했다.


간단히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부탁했는데, 미소씨의 일본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발음은 거의 원어민 수준이었고 경어 사용도 자연스러웠다. 나는 괜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내가 이 사람한테 뭘 가르쳐줄 수 있는 거지?'


그녀의 고민은 면접만 가면 분위기는 좋은데 자꾸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면접장에서 일본어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데 그 이후에 결과가 자꾸 안 좋으니까 자신감이 떨어지고 더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하여 직접 작성했던 엔트리 시트(자기소개서) 내용이나 면접 때 대답했던 내용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이다 보니 잘 안 보이는 건가라는 싶기도 했지만 상대방은 내가 첫 컨설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조용히 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의 면접을 진행하던 중에 번뜩 불편함이 느껴지는 포인트를 발견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는데 미소씨의 대답이 1분 30초를 넘어가고 있었다.

일본어 자체는 완벽했다. 문법도, 발음도, 경어도. 하지만 뭔가 계속 듣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A를 물어보면 A, B, C, D를 전부 이야기한다.

'왜 일본 취업을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도 똑같았다. 대학 전공 이야기에서 시작해,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 일본 기업의 장점, 한일 관계의 중요성까지. 잘 보이고 싶은 탓에 '나는 이런 것도 잘하고 이런 경험도 있고 이러한 실적도 있어요'와 같은 식으로 살짝 오버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살짝 고민했지만 오히려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솔직히 전했다.

"미소씨,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일본어는 정말 완벽하세요. 근데 지금 미소씨 이야기를 듣는 게 조금 피곤하더라고요."

미소씨의 표정이 굳었지만 나는 계속 이어갔다.


"면접관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하루 종일 앉아서 똑같은 질문 하고, 똑같은 대답 듣잖아요. 그런데 한 명이 들어와서 한 질문에 3분씩 대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면접관이 궁금한 건 미소씨의 일본어 실력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깔끔한 답이거든요."

미소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차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도 한국인 치고 일본어 실력이 좋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 부분을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점점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주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다시 정리했다. 2분짜리 대답들을 30초~1분으로 줄이는 작업이었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요?'라는 질문에는 "귀사의 비전이 제 가치관과 맞아서이고 그 이유는 ~이기 때문입니다"까지만. 그럼 면접관이 추가로 궁금한 부분을 물어올 것이고, 그때 추가로 설명하는 식으로.


일본 면접은 캐치볼이다. 상대가 공을 던지면 받아서 다시 던져주는 것. 공 하나 받고 열 개를 던지면 안 된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취업자 명단에서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첫 컨설팅 당시로 돌아가서 어리바리하고 있다가 번뜩 그런 불편함을 느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소씨를 통해 취준 시절 일본계 기업 면접장에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발악하는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일본계 최종면접만 가면 떨어졌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라는 점을. 이것이 거울치료라는 거구나라는 점을 체감하고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었다.


그리고 그해 연말 업무상 친해진 일본인 인사담당자 타카하시 씨와 회사 근처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며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니 갑자기 흥분하며 한 이야기가 잊히지가 않는다.

"말 좀 더듬어도 좋으니까, 그냥 묻는 말 잘 알아듣고 결론부터 쉽게 대답하는 친구만 면접하고 싶어."

어지간히 동문서답이나 과대포장에 당해온 느낌이 느껴져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이어서 그 친구가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궁금한 건 일본어 실력이 아니라 면접자 그 사람인데, 다들 그걸 잘 모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맥잔을 비웠다.


집에 돌아와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아무리 유창해도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면 소음일 뿐이고, 조금 서툴러도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말이면 그게 진짜 소통이다.


술이 살짝 모자라 맥주를 한 캔 더 땄다. 씁쓸한 맛이었다.



*이 창작물에 담긴 이야기들은 저자가 2018년부터 일본 취업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며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조언의 내용과 인사이트는 실제 컨설팅 과정에서 얻은 것이지만, 등장인물의 이름, 학교, 회사명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변경하거나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