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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잼 Dec 27. 2024

매일 스스로 배를 찌르라니

그것도 하루 4번이나?

대학병원에서 1형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실감은 안 났다. 남자는 진단을 받을 경우 무조건 5급 병역 면제이기에 좋아하고(주로 25세 이전에 발병한다), 여자애들은 우는 경우가 많다고 의사가 말했다. 


매일,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그 말을 들을 당시에도 믿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설마 정말 그렇겠어, 언젠간 고쳐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망가진 췌장의 작용은 돌아올 수 없는 것이었다. 췌장이식이라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췌장의 본질적인 기능이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침 여름방학이었다. 온갖 죄책감이 들었다. 아빠가 그렇게 자책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빠는 내 병의 원인이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어렸을 때부터 식생활에 신경 써주지 못했다고 말이다. 참고로 다시 기술하자면, 1형 당뇨는 2형 당뇨와 달리 발병 원인이 식습관에 기인하지 않는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난생처음 입원을 했다. 주사기라는 존재도 공포스러운데, 배에 주사를 맞는다니. 한 번도 그렇게 맞아보지 않았을뿐더러, 살이 무척 빠져서 통통한 뱃살도 사라진 상태였다. 내장이 가득 찬(?) 배를 덮고 있는 뱃가죽에 주사를 놓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리고 그걸 하루에 4번이나? 바늘이 뱃가죽을 뚫고 내장에 닿지는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만큼 생소한 일이었다.


입원을 하고 어느새 주사를 맞을 시간이 되었는지, 드르륵, 트레이가 끌려오는 차가운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에게 주사가 아플지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앳된 모습의 간호사는, 다른 환자들의 말에 의하면 주사를 놓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프지 않다고 했다. 


주삿바늘이 배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아무 느낌이 없을 수가 있을까.

간호사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짐작하며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환자복을 올려달라는 요청에 어색하게 옷을 들었다. 간호사는 내 뱃가죽을 슬쩍 잡아 올려 주사 맞을 부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알코올솜으로 부위를 닦았는데 그 모든 과정이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걸 매일 여러 번, 평생 해야 할까, 생각하며 그것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놀랍게도, 간호사의 말대로 주사를 놓은지도 모를 만큼 별 느낌이 없었다. 흔히 접종을 맞을 때처럼 따끔한 고통을 기다렸는데, 아무 느낌도 없는데 벌써 주사를 놨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매번 고통을 참으며 주사를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말이다. 


베테랑이 된 지금에서야 얘기하자면, 주사를 맞는 것은 이따금씩 매우 아프다.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끝까지 주사액을 주입하지만(다시 뽑고 주사액 맞춰서 찌르기 귀찮다), 정말 운이 안 좋게도 매우 아픈 곳을 찔렀다면 주사액이 충분히 들어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뽑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김없이 주사 부위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멍이 들어 며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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