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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들파파 Feb 23. 2022

뭐라도 그냥 하면 돼요.

'막연하게 하고 싶은 게 있다' 정도의 출발선도 괜찮은 것 같다.

  여름이었다. 어깨에 81미리 박격포의 포다리를 짊어지고 경사진 도로를 걷고 있었다. 제대를 몇 개월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포다리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되어 있었다. 포다리를 잠시 내려놓고 전우들과 농담 따먹기를 할 때는 주로 지나가는 테라칸(2001년도에 출시된 H자동차의 SUV 차량) 같은 차량을 보면서 나도 제대하면 저 차를 살 것이라는 시답지 않은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을 때였다. 주로 제대하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공부를 하고, 어디에 취직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 주로 이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생각이었다.


  경험도 없고 정보도 없는데 계획만 거창했던 시기, 계획이라도 거창하게 세워놔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기가 그때였던 것 같다. 사업가가 되고자 했다. 구체적인 생각은 없었다.


  제대를 했다. 막연하지만 사업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창업동아리가 있었다. 경제 지표들을 기반으로 개별 기업에 더 연관성이 높은 지표를 변수로 해서, 통계 프로그램에 코딩을 하고, 그 프로그램으로 주가 방향을 예측하고, 매수(Buy)/매도(Sell) 신호를 제공해서, 돈을 벌자는 게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미국 시장이 우리나라 밤 시간에 열리므로 변수 업데이트를 위해서 아침마다 동아리방으로 출근을 했다. 덕분에 주식시장, 주식의 가격, 주식과 관련된 직업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창업을 배우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졸업학년이 되었다. 영업직으로 증권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으로 진로를 바꿨다. 창업 생각은 거의 잊어버렸다. 2006년 PB(Private Banker)라는 직업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다. 증권회사로 입사해서, 강남같은 부자가 많은 지역에 있는 지점으로 배치를 받아서, 이론과 실전을 겸비하고 부자들이 자산을 나의 소속회사를 통해(이게 포인트이다.) 주식, 펀드, 채권, 부동산 등으로 나눠서 투자하게끔 해서,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고, 나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한다는데...


  아무튼 증권회사에 취직을 했다. 강남 같은 부자가 많은 지역은 아니지만, 강남 옆이라서 부자가 찾아올 정도의 거리가 되는 강남 옆에 있는 동작구에 있는 지점으로 배치를 받았다. 이론만 어느 정도 겸비를 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부자이거나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내 조언에 따라 자산을 나눠서 투자하게끔 하고, 자산 증식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파악한 현실은, 나는 조언할 능력이 없었고, 그저 내 월급의 3배 이상의 수수료를 고객의 주식자산을 회전을 시켜서 벌어야 하는 게 다였다. 참고로 주식자산은 회전율이 높을수록 손실확률이 높다. 다행스럽게도 2007년 우리나라 Kospi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pt를 달성했다. 고객은 알아서 찾아왔고, 스스로 본인들의 주식자산을 회전시켰고, 나는 잠깐동안, 정말 잠깐만, 편하게 월급을 받아갔다.


  이후에 지점에서 인사 관련 부서로 이동도 했다. 그리고 모두가 말리는데(특히 가족들이), 증권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주식투자만 하는 작은 회사로 이직도 했다. 주식 투자를 하면서 나름 거액을 손해 보았다. 증권회사 법인 대상 영업부서로 재입사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부동산 투자를 했다. 지금은 다른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다. 주식 투자도 다시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성인이 되었는데 내가 뭘 잘하는지 몰랐다. 대부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몰라도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뭔가를 잘해보려고 정해놓고 힘들게 노력해 본 적도 없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럴 수 있다. 내가 아는,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꽤 멋있어 보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막연하지만 나도 저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때서야 생각을 해본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무엇을 하는 게 도움이 될까.


  그리고 생각이 바뀐다. 타협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해볼 수 있는 다른 직업도 괜찮은 것 같다. 그나마 운이 좋게도 내가 원했던 일과 비슷한 직업을 얻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이럴 줄은 몰랐다. 당황스럽다. 괜찮다. 의지를 갖고 있다면 바꿀 수 있다.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일을 갖고자 한 것이 아니었던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돈을 더, 좀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꼭 직업을 갖고 어딘가 소속되어서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여담이지만 월급은 잘 모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하면서 다른 돈벌이도 생각하게 된다. 가령 투자 같은 것을 할 수 있고, 자산이 커지고, 수입도 늘어날 수 있다. 투자도 사업에 가까우니까 꿈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무튼 내가 그랬듯이, 당신도 그럴 수 있다. 너무 방황하지 마시라는 거다. 막연하게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정도의 출발선도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뭐라도 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과 노력 정도에 따라 결과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삶은 생각보다 꽤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당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그건 좀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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