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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들파파 Mar 13. 2022

첫 이직의 기억

절박함 밖에 없었는데 절박함을 알렸더니 기회가 왔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하루 종일 PC 앞에 앉아서 문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 전날 만든 문서가 퇴근 전에 통과되지가 않아서, 전날 밤까지 그 문서를 만들다가 퇴근을 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 문서를 다시 만들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같은 문서를 만들고 있다. 오늘 퇴근 전에는 통과가 되려나...


  처음으로 들어갔던 회사의 인사 관련 부서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 전 연도부터 2년째 일하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해였는데 지점에서 본사로 이동했다고 가족들의 자부심은 더 커져 있었다. 처가 부모님도 더 좋아하셨다. 덕분에 결혼식 때 하객들도 더 많이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해가 바뀐 지금, 나는 점점 더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다. 한시도 더 버틸 수가 없었다. 다 놓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마주하기 싫은 사람이 있기는 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매번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아무리 장시간 열심히 일을 해도 월급이나 소득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받는 대가는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직급에 따른 연봉 테이블에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성취감도 좀 느끼고 싶었고,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었다.


  가족들은 내가 그나마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에 다니면서 매월 같은 월급을 받아오는 것에 안정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괴로움 끝에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때쯤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S선생님이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내가 글쓰기를 실천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되는 분이기도 하다)


  "사장이 오너(주인)인 회사, 그 오너를 대면할 수 있는 회사로 가라. 그런 회사를 가서 일에 미쳐 있는 사장을 만나라. 상사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는 곳(대기업)에서는 일하지 말라."


라는 거였다. 명확해졌다. '직원이 몇 명 없는 소기업으로 가야겠다.'(이때만 해도 너무 설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구인 사이트를 뒤졌다. 회사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직무를 보면 대충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도망가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결혼한 지 2년 차, 곧 있으면 아기도 가져야 하기에 쉴 수는 없었다. 그때까지는 아내도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런 상황을 아내에게만 알렸다. 소기업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떨어졌고, 또 떨어졌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기업 입사에도 성공했는데 소기업에서 나를 받아주지를 않는다. 나의 근로의지를 믿지 않는 것인가. 서류상으로는 내가 준비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내가 소기업 오너나 인사담당 직원이었어도 나 같은 지원자는 뽑지 않은 것이다)


  상태만 점점 안 좋아졌다. 이직하기로 결심은 했는데, 어디든지 뽑아주기면 한다면 옮겨갈 텐데 갈 데가 없다. 이직을 하려면 최소한 지원하는 업무와 연관된 경력이 있거나, 신입으로 가려면 강한 의지라도 보여야 하는데 나는 둘 다 아니었던 것 같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직할만한 회사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몰랐었고, 그저 절박함만 있었을 뿐이었다.


  기대는 점점 약해졌다. 별다른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힘들어서, 힘들다고 주변에 징징거렸던 것 같다. 어찌어찌 절박해 하는 내 소식이 전해졌나 보다. B투자회사에 있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입으로 주식 조사분석 업무를 할 사람을 뽑고 있다고 한다. 이력서 먼저 보내주고, 추천을 해줄 테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자본금 20억, 직원수가 사장 포함해서 4명인 회사였다.(나중에 들어가서 보니 그 자본금마저도 일부 손실이 나 있는 상태이기는 했다.


  면접을 봤다. 몇 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받았고, 지금 받는 연봉을 맞춰줄 테니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한다. 사장이 오너였고, 오너랑 너무 심하게 대면할 수 있었고, 일에 미쳐 있는 사장으로 보였다.(이 세 가지 부분은 딱 들어맞았다) 기존 회사에서 난 도망가고 싶었고, 나를 뽑아주겠다는 회사가 생겼다. 망설임 없이 사직서를 냈고, 나는 첫 이직을 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발적으로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노력이 그 선택의 결과를 좋게 만들어 주고, 운도 조금은 따라와 준다. 그래서 어떤 선택이 고민이 될 때는 '후회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선택을 하고, 본인이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아무튼 나의 첫 이직은 매우 어설펐다. 혹시 당신이 이직을 하고 싶다면 그 이유와 목적이 좀 분명해야 될 것 같다. 나는 가진건 절박함밖에 없었다. 당신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직할만한 회사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서, 이직의 의지를 어떻게 하면 이력서상으로 호소할 수 있는지를 좀 알아보고 고용시장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절박할수록 좀 냉정해져야 될 것 같다.


그리고 안되면 혼자 너무 끙끙대지 마시라는 거다. 절박함을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데라도 많이 알려보자. (요즘 같으면 여러 루트를 통해 당신의 이력서를 올려놓는 것이다.) 당신은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잘하면서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는가.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회는 달려와서 손짓할 것이고, 준비된 당신은 그 손을 잡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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