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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이동의 사다리 다시 놓기

사회주택의 확산의 필요성

신혼집을 월세에서 시작해서 전세로 그리고 집을 장만하는 일을 주거이동의 사다리라고 필자는 부른다. 한국도 한때는 주거의 이동이 상당히 활발했다. 월세방에서 시작하여 전셋집으로 그리고 자기 집을 마련하는 일이 빈번했다. 어른들은 신혼부부가 월세방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거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반복된 집값 폭등으로 주거이동의 사다리 모델은 과거의 추억으로 전락했다. 


거의 해체되다시피 한 주거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복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은 복지국가의 시스템(네 개의 기둥)이 튼튼하지 못하고, 각 정치 집단 간의 사회적 합의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정책적 수단을 통해 주거이동 사다리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주택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다. 상품으로 주택의 특징은 ① 입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고 ② 고가의 소비재이며 ③ 공공재의 성격과 사유재의 성격 및 자본재로의 성격을 지닌다. 상품으로써의 주택에 대해 영국의 학자 케메니(Kemeny)는 나라마다 주택점유형태, 복지체계, 임대시장의 특성 등을 분석하여 단일임대시장(Unitary rental system)과 이중임대시장(Dualist rental system)으로 분류했다. 


케메니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이중임대시장을 가진 나라다. 이중임대시장은 소셜하우징*의 숫자가 적고, 빈곤층의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공급되었으며, 민간 주택시장과 단절되어 있는 시장을 의미한다. 이중임대시장은 소셜하우징에 빈곤층들이 입주하여 격리 혹은 배제되며, 각 주택 점유형태(자가 소유 : 민간임대 : 소셜하우징) 간의 장벽이 높다. 


*케메니가 말하는 소셜하우징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건설하여 소유.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 공급자들이 소유.임대하는 사회주택을 포함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적임대인들이 운영하는 임대주택을 포괄하여 Social -Housing이라 부른다.


이중임대시장에 비해 단일임대시장은 자가 소유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소셜하우징과 민간임대주택이 통합된 주택시장이다. 학자들은 이중임대시장이라는 주택체제(Housing Regime)를 가진 나라들보다, 단일임대시장이라는 주택체제를 가진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주거이동의 사다리가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본다.


한국은 주거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진 이중임대시장을 가진 나라이다. 한국에서 주거 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놓는 것은 가능할까? 쉽지 않다. 이중임대시장 자체가 주거 이동의 상당한 장애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 대비 주거 환경은 민간임대주택시장의 동일한 임대료에 비해 월등히 좋다. 뿐만 아니라, 거주기간도 안정적이다. 더구나 임대료 급등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로 하여금 비슷한 임대료의 민간임대주택으로의 이동을 막는다. 임대료의 차이가 너무 커서 현실적으로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공공임대주택의 주거 환경이 비슷한 임대료 수준의 민간임대주택에 비해 상당히 우수하기 때문에 민간 임대시장으로 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들은 퇴거 요청을 받을 경우 민원, 집회 등 거주기간 연장 등의 저항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거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놓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정책의 변화도, 사회주택의 공급 역량 및 운영 관리 역량도, 공급 확대를 위한 PF(프로젝트 파이낸스) 역량도 높은 수준이 아니다. 


또한 각 정치 집단 간의 사회적합의(Coporatism) 수준이 높아야 한다. 독일은 단일임대시장을 가진 국가이다. 독일은 전체 주택 재고량 대비 소셜하우징의 비율이 약 5%로 유럽 국가들에서 낮은 편이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은, 특히 주거 약자들의 주거 안정이 한국처럼 불안하지는 않다. 소셜하우징의 숫자는 적지만, 임대료 통제 정책 등으로 공공성이 강한 민간임대주택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다양한 지원과 통제 장치를 시스템화했다. 주택체제론에서 독일을 조합주의국가라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 사회주택 프로그램 도입방향(2016년, 박은철)에서 재구성(미발표 자료)


한국에서 주거 이동의 사다리를 다시 놓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네 개의 기둥들이 다 부실하게 시공된 나라에서 주거기둥만 튼튼하게 보강 공사를 할 수는 없다. 네 개의 복지기둥을 동시에 리모델링하는 것도 우리의 경제 실력과 사회적합의의 수준을 볼 때,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 인정이 주거 이동의 사다리를 만드는 시작이다. 


한국은 복지국가로 가는 힘겨운 여정을 하는 상태이다. 네 개의 기둥을 튼튼히 세우기 위해 여와 야, 진보와 보수가 정치와 경제의 장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사회적합의 또한 아직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갈 길이 먼 나라이기에 주택체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중임대시장 구조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청년과 신혼부부 등 미래세대에게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공임대주택의 우선 공급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직 한국에서 공공임대주택은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잔여적 복지정책일 수밖에 없다. 


주거이동의 사다리를 튼튼하게 놓으려면 ① 법률 정비 및 제도 개선으로 공공의 지원이 확충되는 정책 환경의 혁신 ② 도시주택기금 및 국민연금 활용 등 사회주택 공급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 환경의 혁신 ③ 영국의 HCA(homes and communities agency) 같은 지원 조직 및 지원체계의 혁신 등이 요구된다.


물론 ‘주거이동의 사다리’를 튼튼히 놓는 것은 사회주택 공급과 확대만으로는 어렵다.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으로 법적으로 보호하는 등 법률도 더 정비해야 하며, 비교임대료 등의 정책을 도입하여 소비자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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