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내 꿈을 설명하는 일
책방 계약서를 쓰고 뒤돌아서자마자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난생처음 장사를 시작하려니 자타공인 강심장인 나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몇 발자국 앞에 있는 자동차까지 걸어가는데, 땅바닥이 오르락내리락 그네를 타고, 하늘은 뱅그르르 꼬리잡기를 했다. 대낮인데도 앞이 깜깜했다. 그 순간 오늘 아침 뉴스에 어떤 연예인이 빌딩이 몇 배가 올라서 일 년 만에 삼십억을 벌었다는 기사, 아파트 널찍한 통창을 배경 삼아 ‘이사 끝! 가슴이 탁 트이네!’라고 올린 이름만 겨우 아는 누군가의 사진도 생각났다. 나는 은행 개점하기도 전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몇천만 원 대출도 어렵게 받았는데! 그마저도 밀린 대출금 갚고, 오늘 계약금을 내고 나니 없어졌지만 말이다.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어찌 되었든 알려야 했다. 사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 근처에는 가고 싶지 않은 아버지를 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특히 현실적인 어머니 말에 맘이 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동정하는 마음이라도 들도록 최대한 가련하면서도 친절하게 책방 하려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책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초중등 방과 후 수업을 하던 것을 예를 들어가며 고정수입을 벌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어머니는 과정은 모르겠고, 돈벌이가 되냐는 질문만 몇 번을 했다. 나는 최대한 마음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뭐라도 해야지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바짝 다가와서 말했다.
“돈도 못 버는데 그 일을 왜 하느냐? 뭐라도 하긴! 이럴 때일수록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지. 일 벌이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흘렀다. 나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도와주나?”
어려운 길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쉬운가? 솔직히 돈이 있으면 고정수입이 나오는 일을 하면서, 강의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먹고사는 일에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자그마하게 하고 싶었다. 지치고 힘들 때면 위안 삼던 ‘꿈’, 현재 삶을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지만 힘들 때 위로가 되었던 일을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쓰리고 아팠다. 몇 번이나 설명하는 내 성의에 지치셨을까? 어머니는 '실속 없다!'는 고정 멘트를 이번에는 건너뛰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싶었다. 애써 잘 준비하고 하라는 어머니 말과 텔레비전 재방송 축구 경기에 빠져 있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허겁지겁 나왔다. 속이 메슥거렸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신 것이 전부다. 종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배가 고픈지도 몰랐다.
그래, 무슨 일이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결정만 아니면 된 것 아닌가? 내가 이 일을 한다고 우리 식구가 당장 길바닥으로 나앉는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 피해 주는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기죽어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니, 이제는 그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은 건 아닐까? 괜히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걱정되니 아무 관련 없는 연예인 돈 벌었다는 소식에, 몇 사람 건너서 알고 있는 누군가 잘 된 소식에, 어머니 걱정에 속상해했던 것이겠지. 다시 시동을 걸었다. 다음 갈 곳은 어디지? 그래. 세무서에 가서 ‘리본 책방’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변경해야 한다. 자동차 가속기를 깊게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