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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셋넷 Jul 15. 2022

슬픔과 우울의 차이

우울증 극복하기 - 마음껏 슬퍼하되 정확하게 슬퍼질 것

우울증은 있지만 슬픔증은 없다

슬프다는 말은 있지만 슬픔증에 걸렸다는 말은 없다. 나에게 오는 사람들은 슬픔증 환자가 아닌 우울증 환자들이며 의사인 나는 우울증을 치료하지 슬픔증을 치료하지 않는다. 우리는 슬픔과 우울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슬픔을 병적인 것으로 보고 회피하거나, 우울증을 정상적인 감정으로 보고 방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상실과 애도

슬픔과 우울은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상실의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한계가 있으며 세계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실망스러운 사실을 깨닫는다. 나와 세상에 대한 기대를 수정하고 상실한 대상을 보내야 함을 인정하기 위해 애도의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슬픔 혹은 우울이다.  


상실 이후의 나

상실을 맞이하는 사람은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다. 우리는  감정의 변화를 슬픔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리지만  안에는 원망과 분노, 자책과 자기 비난, 때로는 무력감과 같은 감정이 덮여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슬픔도 결국 사그라들고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마음속에 평온함이 찾아온다.

그때의 나는 상실 이전의 나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소중한 것이 떠났음을 수용하고 나와 세계를 보는 관점을 수정한다. 조금 더 부정적이 되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긍정적인 면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애도의 과정을 겪은 이후에 우리는 세상을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보게 된다. 상실을 통해,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는 건 아마 이런 의미일 것이다.


슬픔의 미덕 - 정확한 인식

예컨대 이런 식이다. 여기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있다. 이전까지 그는 주변의 모든 친구들은 자신의 지지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험으로 슬퍼하는 그에게 다가와 진심 어린 위로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부당하게 깍아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슬픔 이후에서야 비로소 누가 진짜 친구였고 누가 아니였는지에 대해, 내 주변의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스스로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다. 시험에 떨어진 이후 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이며 이 정도의 노력으로는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슬프지만 이를 인정한 이후에는 내가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슬픔 이후에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기쁨은 슬픔이 가지는 ‘정확한 인식’이라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기쁠 때 한없이 기쁘기 때문이다)


슬픔과 우울의 차이는 디테일에 있다

'상실'이라는 동일한 원인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우울은 명확히 다르다. 상실의 상황에서 그에 정확히 아파하는 것이 슬픔이라면, 우울은 극단적으로 사고하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한번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상황을 살펴보자. 친구들 중 일부는 나의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면 슬픔이다. 반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의 편이 아니었고 나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절망하는 것은 우울이다. 이번 시험에 떨어진 것이 안타깝다면 슬픔이고, 나는 어떤 시험도 붙을 수 없는 인간이라고 느낀다면 우울이다.

슬픔 이후의 나는 더 정확해졌으나 우울 이후에 나는 더 혼탁해진다.


결국 슬픔과 우울은 디테일을 파악할 수 있느냐로 구별된다. 우울은 디테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내 삶을 오로지 어둡게, 까맣게 칠한다. 슬픔은 새까맣기만 한 것 같은 검은색 안에도 명도 차에 따라 수많은 색이 존재하고 있음을 안다. 비록 밝고 화사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그런 삶도 그려낼 수 있음을 안다. 그러한 형태의 어두움이라면 경험할 가치가 있다. 충분히 디테일한 어두움과 고통, 슬픔이라면 말이다.   


우울 극복하기 - 정확하게 아파할 것

여기서 우리는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애써 기뻐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잘못된 위로의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우울은 슬퍼해야 했을 애도의 과정을 잘못 밟았기 때문에, 즉 정확하게 아파하지 않아 삶이 도리어 혼탁해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기뻐하려 하면 이미 부정확해진 삶이 더욱 불분명해지기만 할 뿐이다. 우울한 사람은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다만 정확하게 딱 그만큼만 아프고 슬퍼져야 한다.




인간의 삶은 어딘가 고장난 제멋대로의 행성 같다. 그 행성은 자전주기가 일정치 않아서 우리는 대부분의 인생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지낸다. 나는 애써 밝은 하늘을 그려 보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어두운 밤하늘도 자세히 보면 새까만 어두움과 좀 더 밝은 어두움이  있으며, 문득 시야를 돌리면 밝은 별 하나가 나를 비추기도 한다. 그것들을 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정확히 밤하늘을 그리다 보면 문득 아침이 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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