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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Jan 28. 2023

거리를 박제하다 - 홍대

작년 한 해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매주 한 편씩의 글을 써왔는데, 새해에는 주변의 조언에다가 우리의 아이디어를 엮어 반영해 보려고 한다. “고민의 깊이를 더하고,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자”. 무작정 쓰지 말고, 내용과 구성을 고민하고, 퀄리티를 올리기 위해 매주가 아닌 격주로 글을 쓰기로 했다. 


고민의 결과물을 몇 회에 걸친 “장소”에 대한 연재로 보여주고자 한다. 내가 스쳐갔거나 자주 머물러서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 지금도 존재하지만 과거에는 사뭇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들. 기억이 희미해져 사라지기 전에 그곳들을 글로 박제하려 한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작은 골목 하나하나, 그곳의 과거에서 현재까지가 눈앞에 바로 선명히 펼쳐지는 “홍대”다.  홍대는 홍대입구 2호선 전철역 근방에서 넓게는 상수역과 합정동까지를 어우르는, 누구나 인정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이다. 


나에게 홍대의 처음은 화한 알콜향으로 기억된다. 이곳을 처음 발을 디디게 된 건 고등학교 때이다.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나와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간 골목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찻길 따라 가건물이 즐비했고, 옹기종기 분식점이 모여 있었다. 난 종종 친구들과 그곳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특이하게도 소주를 잔술로 팔았다. 또래보다 키가 커서였을까 아니면 당시에는 고등학생 정도면 소주 반잔 정도는 당연한 거였을까. 용기 내 주문하자 무심한 듯 아주머니가 종이컵을 건네는데, 바로 그때 코로 훅 들어오던 소주의 화한 기운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삼십 년이 지났지만 잊어지지 않는다.


당시 홍대는 한국미술의 메카였다. 영원한 미소, 창조의 아침 등 잘 나가는 미술학원들과 미대생들, 무명/유명 작가들의 화실들, 크고 작은 화방이 건물마다 한 두 개씩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계단이건 화장실이건 그들이 달세 대신 내어주었을듬한 그림들이 어김없이 걸려있었다. 돌아보면 이들이 뿜어내던 ‘뭔가 예술적인’  에너지가 홍대로 우리를 끌어들인 원천이리라.


홍대하면 클럽 문화를 빼놓을 수 없을텐테, 운 좋게도  난 클럽문화의 시작부터 활짝 폈던 시기까지를 다 경험했다. 처음 간 클럽은 춤을 추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복합 공연장의 느낌이 강했다. 기와로 장식된 디제이부스가 명물이었던 초창기 클럽 중 하나인 명월관은 크고 작은 공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오는 가족도 있을 만큼 복합 문화공간의 성격이 강했다.(자료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홍대 명월관은 연남동으로 옮겨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lubMWG) 그즈음 홍대 거리는 아티스틱한 기운이 넘치는 용광로 같았다. 펑크족, 스킨헤드 복장이 자연스러웠으며, 골목골목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술집과 가게가 그득했고, 클럽에서는 테크노 음악과 펑크, 락음악, 가요가 공존했다. 심지어 거리에 나뒹굴던 전단지마저 예술 작품 같았다. 


하지만, 특색 있는 상점들이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대체되면서 상수동, 햡정동쪽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졌고, 클럽은 대형화되고, DJ의 음악은 힙합으로 획일화되어 문화, 예술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더 이상 거리를 활보하던 펑크족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무엇보다 자주 가던 가게가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주인장의 선곡이 좋았던 LP바 빛, 빨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던 도마뱀, 지하복층에 자리 잡고 있던 세련된 로보, 80년대 디스코 음악이 항상 울려 퍼지던 스카, 세련된 EDM이 돋보이던 마트마타, 재즈 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던 에반스, 플로어가 흙바닥이어서 맨발로 춤을 추어야 했던 무경계팽창에너지, 데낄라가 저렴했던 골드바. 애정하던 가게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마치 나의 옛 친구를 멀리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여전히 홍대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홍대입구 전철역 앞 KFC - OB광장이라는 제법 큰 단층 라이브 생맥주 집이 자리했던- 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항상 꽉 차있다. 펑크족들은 사라지고, 특이한 클럽과 바는 없어졌지만 그 자리를 보드게임방, 방탈출카페, 스티커사진샵 들이 채우고, 거리는 다시 설레는 표정이 가득한 평범한 학생들, 사랑에 빠진 연인들, 큰 배낭을 멘 여행객들로 붐빈다. 그들은 예전의 나처럼 이곳에서 다양한 추억을 만들 것이고, 오랫동안 그것을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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