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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Jul 22. 2023

노을공원 캠핑장

아이들과 아주 오랜만에 캠핑장에 갔다. 코펠에서 침낭까지 온갖 짐을 싣고 간 곳은 노을공원 캠핑장이다. 서울 시내에 자리 잡고 있어 예약이 치열한 곳인데, 아내 덕분에 용케 예약을 할 수 있었다. 땡볕 아래에서 타프와 텐트를 설치하니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겨우 사이트 정리를 마무리하고, 릴렉스 체어에 몸을 기대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신다. 푸른 하늘과 시원하게 펼쳐진 녹색의 잔디밭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노을 캠핑장은 난지도 쓰레기산 위에 만들어진 넓은 잔디밭과 멋진 뷰를 가지고 있는, 이름처럼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캠핑장이다. 잘 관리된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더멀리에는 아파트 숲이 보인다. 현실에서 살짝 비켜 간 듯한 공간이다. 


이곳이 흥미로운 것은 아름다운 캠핑장 아래 감추어진 과거의 무언가도 있지만, 밤이 되면 슬그머니 찾아오는 또 다른 무언가도 있다는 점이다. 캠핑장 바로 옆에 서울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매일매일 처리하는 소각장이 있는데, 자정이 지나면 기이한 소음과 함께 쓰레기 태우는 소리가 캠핑장을 휘감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자는 도중 도대체 이게 뭔 소리지 했는데 알고 보니 소각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낮에 멋진 풍광을 즐기던 사람들이 졸지에 소음과 보이지 않는 연기의 습격을 받지만, 이들은 어떤 반항도 불만도 토해내지 않고, 이를 받아들인다.


아이러니한 곳이다. 매일매일 천국과 지옥이 반복되는 곳. 종일 자연을 몸으로 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밤이 되면 보이지 않는 연기와 소음으로 잠을 들지 못한다. 장작 태울 때 나오는 기분 좋은 불냄새와 쓰레기 태울 때 나오는 무색무취의 연기가 공존하는 곳이다. 아이에게 자연의 삶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는 바로 옆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가스를 감내해야 한다. 문득, 서울의 모습이 이곳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길은 항상 막히고, 공기는 탁하고, 사람들의 어깨와 표정은 늘 딱딱하게 굳어 있다. 


무거운 짐을 산아래에서 위로 옮긴다. 땡볕에 텐트를 치기 위해 바닥을 정리하고, 팩을 땅에 박는다.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아이 입에 넣어준다. 아이는 행복해하고, 부모는 진실을 결코 아이에게 말해주지 않는다. 이 캠핑장 밑에는 수십 년째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묻혀 있고, 옆에서는 밤마다 온갖 쓰레기가 타고 남은 연기와 소음이 난다는 것을 말이다. 난 아마도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이 사실을 말해 주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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