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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Nov 12. 2023

친구, 블루 자이언트

살다 보면, 친구가 몹시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거리를 함께 거닐고,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토요일 오전 교보문고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참 오랜만이다. 문을 막 연 서점은 아직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 한가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마친 책들은 말끔하게 서가에 놓여있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서가를 기웃거리는데,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베스트셀러, 소설, 부록이 두툼한 일본 잡지, 소소하고 비싸 보이는 문구들. 발길이 닿는 데로 미로 같은 서점 안을 마음껏 구경하다가 의자에 앉아 잠시 쉬면서 무얼 할지 고민해 본다. 마침 근처 인디영화 전문 소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어 그곳으로 향한다.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가는 길, 뒷골목 언덕에 자리 잡은 영화관 에무 시네마는 작지만 아늑한 느낌이다. 보기로 한 영화는 블루 자이언트란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고, 다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영화에 대한 평이 좋길래, 고른 영화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재즈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인데, 중간중간 나오는 재즈 음악도 좋고, 그 음악과 재즈 뮤지션을 표현하는 작화도 아주 적절한,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키는 좋은 영화였다. 무언가에 빠져 미칠 듯이 몰두하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부럽기도 했고, 늦기 전에 나도 그러한 열정을 태울만한 그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친구들과 기타를 배우던 때가 문득 생각이 났다. 결혼을 하고, 회사에 다니며 바쁘게 지낼 그즈음,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친구 세 명과 기타를 배우기로 마음먹는다. 토요일 오전, 상수역 근처 선배집에 모여 우리는 기타를 연습했다. 들국화의 내가 찾는 아이로 시작한 기타 레슨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연습은 뒷전이었지만, 아주 즐거운 모임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기타를 등에 메고 상수역에 가는 길에서 우리는 마치 인디 밴드라도 된 양 어깨가 으슥했다.


영화를 보고, 제육볶음과 청국장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한잔씩 하고, 사직공원 뒤편으로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 함께 했던 기타 모임 이야기를 하며 키득거리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블루 자이언트의 주인공들은 재즈도 좋았지만, 셋이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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