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서울역에서 후암동으로 가는 복잡한 골목길을 몇 차례 헤매야 찾을 수 있다. 후암동 언덕길에 빼곡한 빌라들 사이를 돌고 돌아가면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외관은 일반 건물과 비슷하고, 빌딩이라고는 하지만, 6층밖에 되지 않는다. 밖에서 보기에는 평범에 보이는 이 빌딩은 밤만 되면 사람들의 조용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붉은 조명이 나를 맞이했다. 붉은색은 어찌나 강렬한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입구 앞에는 출입 게이트가 있고, 게이트를 지나야 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게이트 옆에는 짧은 머리의 건장한 경비원이 앉아있다. 지인의 소개로 빌딩을 찾아온 나는 게이트를 지나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경비원에게 말을 건넸다.
“저, 클럽에 들어가고 싶은데 게이트를 열어주시겠어요.”
잠시 나의 얼굴을 훑어보던 경비원은 말했다.
“여기는 사전에 예약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예약을 하셨나요.”
경비원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힘이 실려 있다.
“아, 네.. 지인 소개로 왔는데, 예약을 못했네요. 혹시 방법이 없을까요?”
“음. 지인 이름이 어떻게 되죠?”
“Wan입니다.”
잠시 모니터를 확인한 경비원은 무언가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Wan님 지인이시라고요. 확실하신가요. 그럼 지인으로부터 받은 코드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네. 코드는 “나나”입니다.”
“네 맞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지요. 다른 곳은 가실 수 없고, 6층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이후에 자격이 되시면 다른 층도 출입 가능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난 경비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6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인도풍의 이국적인 향이 은은하게 났고, 난 한껏 부푼 기대감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Wan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다. 작년 홍콩의 필름마켓 칵테일파티였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도 지쳤을 때라 그와의 만남은 반가웠다.
“마켓은 어떠셨나요? 작년보다 규모가 좀 줄어든 느낌이네요.”
“네, 이제 홍콩 마켓도 예전 같지 않네요. 전에는 이보다 2배 정도는 더 컸었는데 말이죠.”
“반갑습니다. 저는 Wan입니다.”
그는 VR 장비를 제조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였다. VR에서 메타버스로, 메타버스는 다시 AI로 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점점 더 사업하기는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한때 우리 스튜디오에서도 VR 콘텐츠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터라 우리는 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간간히 만났다. 그의 사무실이 내가 사는 집 근처에 있는터라 퇴근 무렵 술도 한잔하면서 우리는 제법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헤이스팅스 빌딩”에 대해 말해주었다.
“후암동에 가면 아주 특이한 곳이 있답니다.”
평소 일도 노는 것도 열심인 그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 그래요 후암동이면 제가 일하는 곳과 가깝네요. 근데 그곳은 조용한 주택가일 텐데요.”
“맞아요. 그곳은 후암동의 복잡한 골목길 끝에 있는 회원제 클럽인데, J님도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그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6층에 멈추었다. 라운지 음악이 들리고, 이국적인 향냄새가 더 강해졌다.
많이 늦었다. 시간은 자정을 넘었고, 난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밴 향냄새가 몸에 남아 있는 듯하다. 몸은 피곤했지만, 6층에서의 짜릿함이 아직 생생하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6층의 경험은 다른 층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층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Wan에게 물었지만, 웃기만 할 뿐 말해주지 않았다. 6층을 자주 방문해야만 다른 층에 갈 수 있었다. 난 여웃돈이 생길 때마다 6층을 찾았다. 집에는 야근과 회식을 핑계로 후암동 언덕길을 열심히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경비원이 말했다. 뒤늦게 알게 된 그의 이름은 “스탠리”였다.
“스탠리, 문 열어 주세요.”
“J. 이제 5층에 갈 수 있습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그렇게 고대하던 5층 출입인데, 막상 가려고 하니 긴장이 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난 길게 심호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