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교사의 인권침해(?)이야기
완벽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현장에서 학급 규칙을 정할 때 학생이 참여하면 어떤 참사(?)가 빚어지는지 앞선 글에서 다루었다.
(사실 그 규칙을 정하는 과정도 결국은 수업시간을 쓸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시간에 2시간(2개 교시, 즉 40*2분) 이상을 쓰게 될 경우 자칫 학부모 민원이 들어올 수 있다. 왜냐하면 NEIS상 시간표에 학급규칙 정하는 시간 따위는 없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뭐 아차피 모든 수업을 NEIS에 담을 수도 없고 NEIS대로 할 수도 없으니 이건 그냥 넘어가자.)
학급 규칙을 정할 때 구성원의 동의는 어디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앉았다 일어나기 1000번을 벌칙으로 정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다. 그렇다면 100번은 어떨까? 된다 안 된다 의견이 나뉠거라 짐작한다. 10번이면? 이건 된다 안 된다에 더하여 실효성이 있냐 없냐까지도 논의가 있을 수준이다. 결국 모든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가정해둘 수 없기에, 관련 구성원들의 논의와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교사들은 이 과정에서 언제나 잠재적 가해자 역할을 부여받고 제대로 된 참여를 보장받지 못해왔다.
나는 욕설을 매우 싫어한다. 하는 것도 싫어하고 귀에 들리는 것도 싫어한다. 담임교사가 되면 첫 날 첫 시간에 매우 강력히 경고와 권고를 한다. 욕하지 말라고. 물론 당연히 일 년 동안 누군가는 욕을 한다. 나는 매우 엄중히 경고하고 주의를 준다. 그런데 나처럼 욕설을 매우 싫어하는 어떤 선생님이 있었다. 이 선생님은 학생들과 함께 [욕설 금지+욕설을 반복하면 양말을 입에 물기]를 학급 규칙으로 정했다. 당연히(?)학생들은 이 규칙을 어겼고 선생님은 규칙대로 양말을 입에 물게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전국 뉴스에 나온다. 2015년이었다. 인권조사관이 학교에 나가 사안을 파악했다. 다행히 학생과 학부모들이 처벌을 원치 않고 악의적인 사안으로 보지 않아 경고조치와 인권교육 이수 처분이 나왔다. 인권조사관은 해당 교사가 예비교사 시절부터 인권교육을 받지 못하여 인권감수성이 낮은 점을 지적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교사 뿐만 아니라 예비교사들도 인권교육 강의를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감수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현장감수성은 매우 높은 교사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급 규칙을 교사가 정하면 학생의 참여를 배제하였기에 그 자체로인권침해의 소지가 있고 낮은 인권감수성을 방증한다.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고 동의하에 함께 규직을 정했다면 좀 나은편이지만, 정한 규칙에 인권침해 소지가가 있음을 교사가 알고 수정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학급 규칙을 정하는데 무한정 시간을 쓸 수 없기에 정해진 시간 안에서 상호협의하에 최선을 다하여 규칙을 만들어도 그 규칙은 완벽할 수 없다.(사실 완벽한 인간, 완전한 법과 제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완벽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딘가엔 교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전북학생인권센터 인권옹호관(조사관)은 학교에 연수를 하러 나와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도 쉴 권리의 일부라고 말하기도 했다.(실제 자는 학생 깨웠다가 법적 다툼에 휘말린 사례도 있다.)인권침해 여부는 이랗듯 인권감수성이 높은 인권옹호관이나 인권조사관이 판단해준다. 학부모나 학생의 신고가 들어가봐야 교사는 자신의 인권감수성을 진단받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온 인권침해 판단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교사를 아동학대로 판단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2023년 PD수첩에 나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일명 '호랑이 레드카드' 사안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인권침해로 걸리지 않으려면? 인권센터나 도교육청 등 기관에서 안내하는 매뉴얼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이 때부터 교사들은 인권침해에 걸리지 않는,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 생활지도의 근거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각종 매뉴얼을 톺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규정이나 매뉴얼도 모든 상황과 경우의 수를 담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 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례와 똑닮은 문장은 없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어떤 교사가 자신의 사례를 인권전문가와 법원의 판단을 받은 후에야 어떤 행위나 규칙이 인권침해인지 아닌지, 아동학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몇 년 동안 새로운 인권침해 사례들만 늘어나고 Q&A의 분량만 늘어날 뿐이었다.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새로운 진리(?)를 깨닫는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달콤쌉싸름한 진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