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지금 교사는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고 허용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없다.
2012년인가 2013년으로 기억한다. 내가 학교에서 생활부장을 맡게 되었고, (당시)전라북도교육청에서 열리는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 참석한게. 무대 위에는 교수와 장학사, 교사와 학생이 앉아있었고 무대 아래에는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이 많이 앉아있었다. 지금이야 상황과 사정이 많이 다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체벌'-신체나 도구로 학생의 신체를 때리거나, 학생의 신체에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져오는 벌을 주는 행위-이 학교 현장에 빈번하였다. 새롭게 만들려는 학생인권조례안의 핵심 내용은 분명 체벌금지가 아니었지만, 여러 공청회나 토론회에 갈 때마다 단연 체벌금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참석한, 특히 중고등학교 생활부장 교사들의 볼멘 소리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생활지도를 하라는거냐 말라는거냐, 학생끼리 싸우거나 교사에게 대들면 어떻게 하라는거냐, 수업 시간에 대놓고 담배를 피워도 뭐라 못하겠네 등등 초등교사인 나로서는(게다가 경력도 5년이 채 안 되었으니)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대놓고 할 수있단 말인가 싶은 이야기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학생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염색, 파마, 화장을 비롯하여 교복을 리폼(?)하는 것들 모두 교사가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예 대놓고 "치마 폭이나 길이 단속 안 하면 여학생들이 어떻게 입고 다닐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왜냐하면 단속하는 지금도 속옷이 보일 수준이다. 이걸 그냥 놔두는게 정말 맞는거냐?" 라고 물어보는 선생님도 있었다.
무대 위 발언자들의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학생의 발언이었다. 잘 참다가 결국 내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하게 만들었기에 더 기억에 오래 남았나보다. 그 학생의 말을 간추리면 이렇다.
"왜 학생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지 못하는가. 원하는 머리 길이, 색깔, 모양도 가질 수 없는가. 학생은 신체의 자유도 기본권도 없는건가. 어째서 자율학습은 자율로 이뤄지지 않는 것인가. 등교 시간 1~2분 늦는게 기합(무릎꿇기나 엎드려뻗치기)을 받아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인가."
여기까지만 말했다면 나도 충분히 공감하며 그냥 듣기만 했을 것이다.
"왜 선생님들은 우리를 이렇게 통제하고 제한하려고만 하는가. 염색하면 공부에 무슨 지장이 있는지, 화장하면 성적이 떨어지는지, 사복을 입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논의하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거 아닌가. 아니면 학생들을 믿지 못하는건가. 이런 학교를 다니며 어떻게 학생들이 행복할 수있겠는가. 심지어 우리를 단속하는 선생님들은 자유롭게 옷을 입고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이런 식으로 교사를 원흉(?)으로 지목하는 발언이 이어지자 참지 못하고 나는 질문 시간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그런데 어째서 그게 선생님들 탓이라 생각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학생의 말처럼 복장단속, 머리단속, 자율학습 강제가 정말 학생들의 행복을 막는다고 생각한다면 이 물음에 답을 좀 해달라. 방금 학생이 말한 모든 게 없는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염색도 파마도 할 수 있고 옷도 마음대로 골라 입을 수 있다. 심지어 자율학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학교는 초등학교다. 학생은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그리고 교사가 윗물이고 학생이 아랫물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교사가 그런 단속을 마음대로 결정할 자율권이 있다고 생각하나? 교사 위에 교장이 있고 교육청이 있고 교육부가 있으며 학부모가 있다. 교장이 말리고 교육청이 불허하며 교육부가 금지하는 행위, 설사 다 허락하고 허용한다해도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행위를 교사들이 학생의 말처럼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장 눈 앞에서 학생을 단속하는 교사들에게 모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 질문이 끝나자 몇몇 교사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옆자리에 앉은 선배 교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며 질문 잘했다고 격려도 해주었다. 정작 그 학생의 대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때도 자신이 그렇게 행복하진 않았다는 말은 기억에 남는다.
이 질문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일정부분 유효하다. 무엇때문에 교사는 문제행동을 일삼는 학생을 제지하지 못할까? 아동복지법때문에? 반은 맞는 말이다. 그럼 나머지 절반은? 학부모(보호자)다. 지금 대한민국 교사는 학부모가 동의하지 않고 허용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없다. 학부모는 학교에 민원전화를 넣을 수 있고, 학교에 찾아와 교장실로 직행할 수 있으며 교육청에도 민원과 방문을 할 수 있다. 국민신문고나 언론제보도 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보호전문기관도 학부모가 신고하면 절차대로 움직인다. 막상 절차대로 1~6개월에 걸쳐 조사를 마쳤더니 어라? 아무일도 아니었네?? 심지어 교사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증명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넝마가 되었지만 학부모는 언제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 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는 어떤 장치나 제도나 법령도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