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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장감수성 Dec 29. 2024

떨어지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7.2

라떼 교사의 인권침해(?) 이야기

보호자(학부모) 민원은 결국 교육활동 하향평준화로 이어진다.


  할리갈리 초등학교에 6학년 담임교사 4명이 있다고 하자. 같은 교육과정을 공유하지만 담임교사에 따라 운영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학급마다 특색이 생긴다.

딸기반은 에듀테크가 특색이다.

자두반은 리코더와 오르프 악기가 특색이다.

라임반은 독서 토론이 특색이다.

바나나반은 글쓰기가 특색이다.

  담임교사 4명 모두 경력도 충분하고 학급 운영에 자신감도 충분하다. 6학년 담임도 여러 번 해봤기에 관련 자료도 충분하다. 동학년끼리 마음도 잘 맞고 소통도 잘 된다. 1년을 무사히(?) 보내며 자두반 선생님은 이런 발전(?)을 하였다.

  자두반 선생님은 딸기반 선생님에게 에듀태크를 배운다. 학생들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혀 그동안 연주한 곡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작곡하는 활동을 해본다. 새로운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감정을 글로 표현해본다. 라임반 선생님과 이야기하다 저작권과 표절 문제를 다룬 청소년 도서에 관심을 갖고 온책 읽기 활동을 진행한다. 바나나반 선생님에게 토론 활동지 양식을 공유받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토론도 해본다. 모든 활동에 시행착오도 겪지만 그래도 학생들과 함께 소통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나름 즐겁다. 학생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성취감과 자심감도 생긴다. 조금 힘들지만 내년에는 리코더와 오카리나로 곡을 연주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과목과 연계하여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6학년을 한 번 더 해볼까 하는 고민도 든다.(이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민원인이 출동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반은 하던데)왜 선생님은 카훗같은 프로그램 활용 안 하시나요?

(다른 반은 하던데)왜 이 반은 리코더만 불고 오카리나는 안 하나요?

(다른 반은 하던데)우리 반도 온책 읽기 하고 토론활동 하면 좋겠어요. 요즘 문해력이 어쩌구 절씨구.

(다른 반은 하던데)우리 아이가 논술이 좀 약해서요, 글쓰기를 좀 더 하면 좋겠어요. 요즘 서술형이 얼씨구 저쩌구.

딸기반 선생님은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다. 

자두반 선생님은 수능과 아무 상관없는 쓸모없는 것만 가르치는건 아닌지 회의감이 든다.

라임반 선생님은 이러려고 6학년을 맡았나 자괴감이 든다.

바나나반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첨삭지도 해줘가면서 논설문 지도를 했지만 다 헛짓거리였구나 하는 허탈감에 빠진다.

  이제 할리갈리 학교 6학년 교사들은 각자의 특색을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듀테크에 오르프 악기에 온책 읽기와 논설문 쓰기까지 다 잘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냥 교과서로 돌아간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 가르치고 나오지 않는 내용은 굳이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활동은 하지만 나오지 않는 활동은 굳이 하지 않는다. 민원이 들어오면 교과서에 없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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